[역사인문산책] 차별

▲ 민수아 기자

최근 오버부킹으로 탑승객을 강제로 끌어낸 유나이티드 항공이 많은 사람의 분노를 샀다. 해당 항공사는 승객을 고르는 기준이 무작위였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내려줄 것을 요구받은 승객 4명 중 3명이 동양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인종차별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사건 이후의 상황이 더 기막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일은 트럼프가 만든 환경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며 일침을 가했는데 미국 네티즌들로부터 악플 세례를 받았다. 피부색과 차별의 연관성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하다.

<소수의견>의 손아람 작가는 얼마 전 칼럼을 통해 자신의 장애를 털어놨다. 왼쪽 귀에 청각 신경이 없는 그는 소리의 방향과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이 여의치 않다. 그는 장애를 원인으로 차별받은 적은 없다. 그의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의 결과로 차별받는다. 어색한 행동이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차이를 기준으로 눈에 보이게 차별하는 사람은 뻔뻔해서 괘씸하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보이지 않게 차별을 자행하는 사람은 교묘해서 비열하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지만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비열한 사람도 많다. 그중의 하나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부류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반면교사의 타산지석이 되어주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도 있지만, 타인을 교묘하게 차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기는 참 어렵다. 아니, 화가 치민다.

▲ 인간은 다른 사람이 고의로 일으킨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분노를 경험한다. ⓒ pixabay

스위스 심리학자 쉐러(K. R. Scherer)와 독일 심리학자 월보트(H. G. Wallbott)는 1994년 다섯 대륙 37개 나라 대학생 2,921명을 대상으로 일곱 가지의 감정 상태를 연구했다. 그 중, 분노는 대부분 다른 사람이 고의로 일으킨 불쾌하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느낌, 즉 차별이 분노의 주요 원인이란 결론이다.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문장으로 운을 뗀다.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고 구조적인 부조리에 순응하는 지식인의 자기반성이 담긴 시’라고 문학 시간에 되뇌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교묘한 차별은 사소함에서 점점 덩치를 키워간다. ‘조그만 일’에 분노한다고 자신을 성찰하던 시인의 고해성사에 갇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죄책감을 느껴야 할 주체는 사소함에 차별을 심는 자들이니까 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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