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광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그 후 100일, 작별하지 않는다’
2025년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29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을 출발해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탑승객 181명 가운데 단 2명만이 구조되었을 뿐, 179명이 목숨을 잃은 국내 항공사고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예고 없는 비극 앞에 국민들은 충격과 깊은 슬픔에 빠졌고, 정부는 사고 당일부터 새해 1월 4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과 전국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됐으며,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무안공항을 찾는 모습이 이어졌다.
남겨진 이들의 100일을 따라가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뒤, 유가족들에게는 어떤 시간이 남겨졌을까.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어지며 대한민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언론이 연이어 등장하는 초대형 정치 이슈에 집중하면서 비극적인 항공 참사는 대중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 남겨진 유가족들의 슬픔의 시간도 어느새 희미하게 잊혀갔다.
대부분의 언론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 차분하게 이들의 시간을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지난 7일 방송된 <KBS광주> 제작 다큐멘터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그 후 100일, 작별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100일간,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을 카메라에 담았다. 참사 발생 21일째 열린 희생자 합동 추모식, 42일째 진행된 유가족 비상 대책 회의, 49재 합동 위령제를 견뎌내는 유가족들을 밀착해 기록했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던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던 딸을, 아내와 함께 잃은 김성철 씨. 올 3월 결혼이 예정되었던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잃은 나명례 씨. 서해훼리호와 세월호 참사에서 시신 수습을 맡았던 공무원이자, 이번 참사로 가족 모두를 잃은 박인욱 씨. 다큐멘터리 속 유가족들의 시간은 지난해 12월 29일에 멈춰 있었다.
남겨진 이들의 연대와 밝혀지지 않는 진실
일부 유가족은 오랜 시간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했다. 가족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 가까이 있고 싶다는 바람도 있지만, 무엇보다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과 함께하는 정서적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량한 공항에서 맞이한 설 명절, 유가족들은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윷놀이를 하며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기도 했다. 김성철 씨는 “유가족이지만 ‘유’를 빼면 가족”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함께 슬픔을 나누면서 어느새 유가족들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그들이 여전히 무안공항에 머무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고 원인’이다. 유가족은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난 후에도 사고 원인을 알 수 없다는 현실에 답답해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유가족들은 참사 당시 관제사와 조종사 간의 교신 기록 공개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여러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했다. 조사 방향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그러한 정부의 태도는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았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뒤, 유가족들은 사회의 관심이 급속히 줄었다고 말한다. 참사의 기억이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희미해지면서 유가족들은 “우리만의 슬픔이 되어버렸다”고 털어놨다. 국가적 재난 상황은 어느새 개인의 고통으로 축소됐다. 유가족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도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그들이 아직 ‘작별’할 수 없는 이유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공감과 연대
다큐멘터리는 커다란 비극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강조한다. 제작진은 “이번 참사가 절대 잊히지 않고 참사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KBS광주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100일의 기록은,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성찰할 때, 그리고 유족들과 진정으로 슬픔을 나눌 때, 비로소 비극은 개인들의 고통이 아닌 모두가 함께 책임을 나누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참사는 한순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가족들은 이제 무안공항을 떠났지만,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곳,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아직 작별하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