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JTBC '이혼숙려캠프'
이혼 프로그램 전성시대
과거 이혼은 남들에게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족을 중시하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점차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로 변하면서,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관대해지고 있다. 2025년 3월 기준, 대한민국에서 방영 중인 이혼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은 10개 이상이다. 이혼 남녀의 재결합을 다룬 연애 프로그램부터 가상 이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이혼한 스타들의 일상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이혼은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화되고 있다.
이혼을 감추기보다는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방송에서 다루는 이혼이 극단적인 갈등과 감정 소모와 같은 부정적인 내용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가정과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뿐,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JTBC '이혼숙려캠프'는 그 방향성에 대해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지난달 10일, 해당 프로그램은 부부 갈등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여줬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윈회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았다. 이혼의 위기에 처한 부부들에게 한 번 더 깊이 고민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애초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캠프를 찾은 위기의 부부들
이혼숙려캠프는 이혼을 고려 중인 위기의 부부들이 제작진이 제시하는 ‘이혼 숙려기간’ 동안 합숙을 하며 조정 과정을 가상으로 체험해 보고, 관계 회복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캠프에 입소한 부부들은 먼저 자신들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물을 보며 부부관계를 돌아보는 ‘심층 가사조사’ 시간을 갖는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 사항이 영상으로 제시되고, 이를 본 패널들의 지적과 당사자의 변명이 이어진다.
가사조사 시간이 끝난 뒤에는 관계 회복을 위한 ‘고침 과정’을 거친다. 이때 전문가와의 심리 상담과 심리극 치료가 이루어진다. 해당 과정을 마친 부부는 이혼 전문 법률가의 입회하에 실제 이혼 시 겪게 될 위자료와 양육권 설정 등의 현실적인 조정을 경험한다. 이후 결혼 생활 동안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타협점 설정을 마지막으로 캠프에서 퇴소하게 된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자신과 배우자를 바라볼 수 있고, 심리·법률 전문가들이 단계별로 제시하는 실질적인 솔루션을 통해 부부관계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구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숙려가 없는 숙려 캠프
그러나 실제 방송에서는 제작진이 처음 약속한 솔루션이 상당 부분 빠졌다. 상담과 치유를 위한 장치는 마련되어 있었지만, 정작 방송은 출연자들의 자극적인 갈등 위주로 편집됐다. 27회 방송의 경우, 전체 104분 중 부부간 갈등을 보여주는 ‘심층 가사조사’시간이 86분을 차지했다. 합숙하는 동안 이어지는 치료와 상담, 조정 과정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이다. 그 내용 또한 과도하게 자극적이었다. 거의 매회, 부부가 폭언을 퍼부으며 다투는 장면이 포함되었고, 성관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낸 방송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부부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획되었는지, 아니면 애당초 시청률을 위해 그들의 갈등을 대중의 관음적 시선에 노출하려는 목적을 가졌던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선정성 논란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었다. <JTBC> 관계자는 "일반인들의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을 담아 전문가들에게 보여주다 보니 조금 불쾌할 수 있는 내용도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의 위원들은 "방송이 추구하는 바를 잘 알 수 없다", "15세 이상 시청가인데 방송 언어도 자막도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였고,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내용으로 시청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 법정 제재가 불가피하다"며 만장일치로 ‘주의’를 결정했다.
관계 회복이라는 명분과 달리,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장면 노출에 집중했다. 게이트키핑의 부재 속에서 출연자들의 치부는 자극적인 콘텐츠로 재구성됐고, 이는 의도된 화제성 확보 전략으로 보인다.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출'이라는 주장으로는 이러한 자극적 편집을 정당화할 수 없다. 편집 과정에서의 선택은 제작진의 몫이지만, 그 결과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일반인 출연자들에게로 돌아간다. 실제로 출연자들은 개인 SNS를 통해 수많은 익명의 욕설 메시지를 감당해야 했고, 일부는 방송 후 직접 사과를 담은 입장 표명을 해야 했다.
이혼 예능, 어떻게 다뤄야 하나
이혼숙려캠프를 비롯한 많은 이혼 예능이 이혼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명목으로 출연자들을 관찰한다. 실제로 출연자들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은 관계 개선의 시발점이 될 수 있고,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이를 반면교사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본령을 망각하고 화제성만을 쫓는 순간, 출연자들은 과도한 비난과 악성 여론에 노출되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결혼과 이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확산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제작자는 출연자 보호 장치와 윤리적 편집 기준 마련은 물론, 이혼이라는 소재를 어떤 시선과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이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여길 일도 아니다. 이는 단순히 두 남녀가 헤어지는 것을 넘어 사회적 결속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뿐만이 아닌 자녀와 서로의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소재로 활용될 때, 이혼은 현실적인 이야기이자, 민감한 주제가 된다. 따라서 이혼을 다루는 미디어는 이를 지나치게 가볍게 풀어내는 것도, 갈등 중심의 자극적인 서사로만 연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작진이 이혼의 무게와 맥락을 충분히 인식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