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55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작-한겨레 ‘서울로 가는 지역 암 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국내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를 보면, 인구 10만 명당 166.7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전국 곳곳에 암 환자가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서울과 수도권의 병원을 찾는다. 매년, 비수도권 암 환자의 30%, 소아암 환자의 70% 정도가 서울과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향한다. 이들은 4~5시간 동안 수백km를 통원하거나, 아예 병원 근처에 ‘환자방’이라 불리는 원룸과 고시텔을 잡는다.
박준용 <한겨레> 기자는 서울 대형병원 인근을 지나다 ‘환자방’ 전단지를 발견하며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팀(박준용, 권지담, 조윤상, 채반석)은 지역 암 환자들이 서울로 몰리는 현실과 필수의료 공백 문제에 주목했다. 이들은 2022년 11월부터 석 달간 ‘빅5’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성업 중인 환자방 실태를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팀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치료받는 지역 암 환자와 보호자 188명을 설문조사하고, 그 가운데 4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10명의 자문을 거쳐 한국의 지역의료 불평등 실태와 대안을 모색했다.
그 실태를 다룬 기사는 ‘서울로 가는 암 환자’라는 제목으로 2023년 2월 7일부터 16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14편의 기사로 보도됐다. 또한 30여 분의 영상 다큐도 만들어 한겨레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
지역 암 환자들의 현실을 체감하다
1편에서 취재팀은 서울 대형병원과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운영되는 ‘환자방’의 실태를 다뤘다. 취재 결과,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반경 1km에 최소 4곳과 5곳의 환자방이 있었다. 국립암센터 인근에도 최소 6곳이 환자방 간판을 내걸고 운영됐다. 숙박비는 하루 평균 3만~4만 원, 한 달 기준 60만~90만 원이었다. 취재팀은 대형병원이 중환자와 응급환자 위주로 병실을 배정하면서 필수의료 공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설문조사와 통계를 활용하여 기사의 신뢰도를 높였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의 협조로 비수도권 암 환자와 보호자 188명을 설문조사했다. 설문 결과를 김영애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부센터장과 함께 분석했다. 응답자 가운데 56.4%인 106명이 지역 병원 대신 서울 병원에서 치료받는 이유로 ‘(지역병원)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 부족’을 꼽았다.
취재팀은 단순히 데이터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환자들의 실제 일상을 동행하며 취재했다. 2022년 12월 9일, 취재팀은 12살 소아암 환자 희원이의 상경치료 여정에 함께했다. 경북 포항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진 왕복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린 환자에게는 큰 체력 소모를, 보호자에게는 경제적·정서적 부담을 증가시키는 일이었다. 그 밖에도 취재팀은 경북 포항의 유방암 환자와 전북 익산의 자궁암 환자 등도 인터뷰하여 환자들의 고충을 상세히 드러냈다.
서울 아니면 기회 없는 항암 치료
2편에서는 지역 암 환자들이 고가의 항암제 비용을 덜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하려고 서울로 몰리는 현실을 다뤘다. 취재팀은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에서 시행된 항암제 임상시험 자료를 확보했다. 전국에서 진행된 971건의 항암제 임상시험 중 93.4%에 해당하는 907건이 서울에서 이뤄졌다. 특히 제주와 경북에서는 임상시험 자체가 없었다.
암 환자들이 임상시험 참여를 원하는 이유 중에는 경제적 요인도 있다. 건강보험이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고가 항암제는 임상시험 조건 충족 시 제약사가 비용을 지원해 준다. 이를 통해 암 환자들은 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 취재팀은 이러한 임상시험을 위해 울산에서 거주하다 서울까지 와서 치료받는 김춘자(63)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암 환자들, 정보 부족에 수도권으로 몰린다
3편에서는 암 환자들이 겪는 정보 부족과 수도권 의료기관 쏠림 현상의 상관관계를 살폈다. 2022년 대한종양내과학회와 대한항암요법연구회가 발표한 ‘암 환자 대상 소셜리스닝 결과’를 보면, 암 환자 10명 중 약 6명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다. 그런 정보의 출처는 이른바 ‘빅5’ 병원 의사들이었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도 “서둘러 빅5 예약부터 걸어두라”는 글이 많았다.
이런 세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병원과 지역 병원의 암 치료 효과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취재팀은 짚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위암 환자의 사망률이 낮은 상급종합병원 20곳 중 9곳이 비수도권 병원이었다. 사망률이 가장 낮은 병원은 전남대병원이었다. 김영애 국립암센터 부센터장은 “사망 위험이 높은 암종은 수도권보단 지역 대형병원에서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환자 예후에 좋다”고 설명했다.
지역 필수의료의 대안을 모색하다
마지막 4편에서 취재팀은 대안을 모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남 거창군에서 시범사업으로 시행 중인 ‘암 환자 건강주치의제’다. ‘암 환자 건강주치의제’는 지역암센터와 보건소가 협력해 암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지속적인 관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취재팀은 이 사업에 참여한 50명과 심층 인터뷰했으며, 방문 진료 현장에도 동행했다. 사업에 참여한 유방암 환자 ㄱ(50) 씨는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을 해주니까 정보도 많이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이 제도가 실제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자궁암 진단을 받은 김귀선(67) 씨는 서울 대형병원에서 진료받다 거창으로 돌아왔다. 서울 대형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서너 마디만 하고 끝”이었지만, 고향에서 만난 건강 주치의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봐줘서 좋았다고 김 씨는 말했다. 서울 통원 치료로 인한 경제적·육체적 고통 없이, 건강주치의제를 통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취재팀은 이러한 모델이 확대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강정훈 경상국립대병원 교수는 지역의료를 신뢰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를 통해 지역암센터가 수도권 대형 병원의 브랜드 가치를 따라가는 게 아닌, 지역 내 적정 치료 제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살이다. 암에 걸릴 확률은 10명 중 3명에 달한다. 올해부터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암에 걸릴 인구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의 ‘서울로 가는 지역 암 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는 이러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며, 지역의료 체계의 문제와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취재팀은 이 보도를 통해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한국신문협회가 주는 한국신문상 기획•탐사보도 부문에서 수상했다.
*한겨레의 '서울로 가는 암 환자' 연재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장을 생생히 담은 영상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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