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42회 관훈언론상 국제보도부문 수상작 – KBS ‘캄보디아의 범죄도시’

지난해 8월 27일, 경찰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불법 리딩방 사기 조직 일당 9명을 구속했다. '불법 리딩방'이란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 참여를 유도하는 사기 수법이다. 주로 전문 지식이 부족한 초보 투자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 '리딩(leading)'이라는 용어는 초보 투자자들을 이끌어준다는 뜻에서 비롯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리딩방 사기 사건은 모두 6143건이 발생했고, 피해 규모는 5340억 원에 달했다. 월평균 768건, 668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불법 리딩방 조직원 검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기사가 있다. <KBS> 사회부 최인영 기자 등이 직접 캄보디아에 찾아가 잠입 취재한 ‘캄보디아의 내부자들 - 불법 리딩방의 비밀’이다. 지난해 3월, 취재팀은 불법 리딩방을 운영하던 범죄 조직 내부자의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했다. 조직원들이 검거된 8월 27일 이후에는 사흘간 ‘KBS 뉴스9’에서 총 7편의 단독 보도를 진행했다. KBS 취재팀은 이 기사로 제408회 이달의 기자상과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했으며, 후속보도인 ‘캄보디아의 범죄도시’는 지난해 제42회 관훈언론상 국제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취재의 시작은 삼각 검증

최초 제보자는 피해자 명단, 총책의 지시 내용, 주식 정보 등이 담긴 유에스비(USB)를 건넸다. 제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면밀히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원들이 사칭한 투자회사 이름과 피해자들에게 권유한 투자 프로젝트 이름을 발견했다. ‘제프리스’의 ‘허리케인 프로젝트’였다. 뒤이어 취재팀은 허리케인 프로젝트의 피해자를 수소문해 찾아냈다. 제보자와 피해자, 금융기록을 바탕으로 삼각 검증을 거친 것이다.

리딩방 범죄조직은 투자회사를 사칭하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500%의 수익을 내는 상품이 있다고 광고했다. K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리딩방 범죄조직은 투자회사를 사칭하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500%의 수익을 내는 상품이 있다고 광고했다. K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취재를 시작한 3월부터 4월까지 한 달간 발생한 피해액만 37억 원에 달했고, 피해자는 50명을 넘었다. 국내 브로커가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한국인 조력자를 모집하고, 캄보디아 현지의 중국 조직이 이들을 감금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들 조직이 거점으로 삼은 곳의 주소를 확보한 뒤, 취재 기자 2명과 촬영 기자 2명이 잠입 취재를 위해 현지로 출국했다. 무작정 잠입 취재를 나선 것이 아니라, 불법 리딩방 사기의 모든 과정과 구조를 철저히 사전 취재한 뒤, 그 실체를 검증하려고 해외 잠입을 결정한 것이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기자들

철저한 검증으로 사실 관계를 파악해 나간 KBS 기자들은 현지 군인과 경찰도 신뢰하지 않았다. 범죄 조직과 현지 경찰의 유착이 의심된다는 제보도 있었다. 기자들은 현지 관청으로부터 취재 도움을 받는 대신, 직접 현장을 찾았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여행객으로 위장해 캄보디아에 입국했다. 뉴스 촬영용 ENG 카메라 대신 DSLR 카메라 또는 휴대폰 카메라만을 이용해 현장을 촬영했다.

취재팀은 캄보디아에 마련된 불법 리딩방 거점에 잠입하여 그 내부를 촬영했다. K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취재팀은 캄보디아에 마련된 불법 리딩방 거점에 잠입하여 그 내부를 촬영했다. K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범죄 조직이 거점으로 사용하는 건물에는 출입증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취재팀은 사무실을 임대하려는 것처럼 꾸며 접근했다. 입구에서는 무장한 경비를 마주했다. 내부에 식당과 운동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숙식이 가능한 건물이었다. 불법 리딩방 운영을 위해 준비된 다수의 휴대폰 충전기를 발견했고, 그곳에 다수의 한국인이 머물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국내 언론 최초로 불법 리딩방 조직의 내부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건물 내부를 촬영한 취재팀은 주변을 탐문하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한국인 조력자들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 범죄조직이 임대한 건물에서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국인들은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여권을 빼앗겨 탈출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범죄의 재구성

현지 취재에 더하여 내부자의 증언까지 확보한 취재팀은 불법 리딩방의 범죄 수법을 ‘접근-신뢰 형성-갈취’의 세 단계로 재구성하여 체계적으로 보도했다.

범죄 조직은 문자 또는 소셜미디어 광고로 피해자를 유인하고, 텔레그램이나 네이버 밴드 대화방으로 초대해 신뢰를 형성했다. 이들은 대화방에 입장한 피해자를 친밀하게 대하며 무료 주식 정보와 시장 분석을 제공했다. 이를 위해 실제 애널리스트를 고용해 신빙성도 높였다. 뒤이어 유명 투자회사를 사칭한 가짜 앱 설치를 유도하고, 엄청난 수익을 얻은 것처럼 조작한 수치도 보여줬다. 속임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단기간 고수익을 약속받고 거액을 송금했지만, 결국 모두 갈취당했다.

취재팀은 피해자와 범죄자의 대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어 보도했다. KBS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피해자와 범죄자의 대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어 보도했다. KBS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복잡한 불법 리딩방 수법을 쉽게 전달해 피해를 예방하고자 했다. 단계별로 범죄 수법을 체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상호작용) 웹페이지를 개설했다. 피해자는 물론 범죄 조직 내부자의 육성 증언, 실제 사기에 사용된 대화방 사진 등을 담아 현실감을 높였고, 사기범의 시선에서 피해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치도 마련했다.

온전하게 보도하다

수사 당국을 움직이는 후속 보도도 내놓았다. 불법 리딩방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배경에 한국인 피해자를 적극 보호하지 않은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 그리고 범죄자 수사에 비협조적인 현지 경찰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련의 보도 이후, 경찰청은 캄보디아에 경찰 1명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했고, 현지 경찰과 공조 수사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외교부도 납치·감금 등 위급한 상황에 처한 재외국민 보호 조치를 더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기사에 이달의 기자상을 시상한 심사위원들은 “캄보디아 현지 취재를 통해 중국인 총책 밑에서 사실상 감금 상태로 한국인들이 사기에 가담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평가했다.

최인영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 취재 후기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계속 보도”하겠다고 썼다. 그리고 최 기자를 포함한 취재진은 약속을 지켰다. 지난해 10월 22일, 캄보디아를 다시 찾아가 범죄 조직이 임대한 건물 여러 곳을 파악해 고발했고, 한국인 피해자의 납치가 이뤄지는 순간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이를 담은 후속보도 ‘캄보디아의 범죄도시’를 비롯한 일련의 보도로 취재팀은 지난해 관훈언론상 국제보도부문상을 받았다.

* KBS 방송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인터랙티브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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