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JTBC ‘특집 썰전’
12월 3일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이 일상을 깨뜨렸다. 계엄은 국회의 침착한 대응으로 발령 6시간 만에 해제되었지만, 이어진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일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이념 갈등이 더욱 격화됐다. 급기야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극렬지지자들이 같은 날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대통령에게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니고 집기를 부쉈다. 이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51명이 상처를 입었다. 계엄 선포 후 50여 일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전대미문의 난국에 방송사들도 부산해졌다. 시청자들의 정치 비평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를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JTBC>는 과거 간판 프로그램을 부활시켰다. ‘썰전’이다. 자칭 뉴스 털기 토크쇼 썰전은 2016~2017년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의 콤비로 전성기를 보냈다.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2017) ‘백상예술대상’(2017) 등을 수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한창 소란스러울 땐 시청률이 10%에 육박했었다. 썰전은 2019년 3월 1일을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이후 2021년 ‘썰전 라이브’라는 스핀오프 프로그램이 잠시 방송됐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이듬해에 종영했다. 썰전이 정식으로 부활한 건 6년 만이다. 다만 정규 편성이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썰전 2’가 아닌 ‘특집 썰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6년 만에 돌아온 썰전
특집 썰전은 지난 15일 첫 방송을 공개했다. 과거의 포맷을 최대한 유지했다. 원년 MC인 방송인 김구라가 진행을 맡았다. 검은 배경과 높은 테이블, MC의 양쪽에 각 진영의 토론자를 앉히는 썰전만의 시그니처 구성도 그대로다. 전반부는 고정 패널 2인과 MC가 지난 한 주간 일어난 주요 이슈를 주제로 토론한다. 전원책 변호사와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썰전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그 후 TV조선 앵커, 자유한국당의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박범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대전 서구 국회의원이다. 판사 출신 정치인으로 문재인 정부 때 제68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1편 전반부에서는 두 패널이 공수처의 수사권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전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 내란죄가 아니고 형법 123조 직권남용으로 수사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대통령을 재직 중에 기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공수처의 관할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인데, 대통령 주소지가 서부지방법원 관할이라 해서 영장을 서부지방법원에서 발부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에 1차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는 것은 허위정보라고 말했다. 판사 3명이 있는 하위 재판부에서 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되었다고 판단했음을 근거로 공수처 수사권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전 변호사는 서부지방법원에서 2차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우리법연구회’라는 진보 이념 성향의 판사 모임 출신이라는 공격도 펼쳤다.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가 철회된 건에 관해, 전 변호사는 이를 민주당의 전략적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대법원 선고가 나오기 전에 조기 대선을 치르려 한다는 것이 전 변호사의 주장이다. 이에 박 의원은 첫 변론 기일이 이미 잡혔으므로 재판을 지연할 의사가 없다며, 탄핵소추안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무관하다고 반론했다.
‘계엄이 내란이었는가’라는 주제에 관해서 박 의원은 “비상계엄 시에도 국회는 보호받는다. 이번 포고령에는 국회와 정당 활동을 금하는 게 1호. 포고령 자체가 내란죄”라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포고령 문구를 빌미로 내란죄를 주장하기에는 논리가 빈약하다며, 국회의 의결에 순응하고 계엄을 해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내란죄는 결과범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다시 말해 계엄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을 뿐더러, 내란이 실패한 원인은 국민과 군, 경찰의 성숙한 태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전 변호사는 ‘국회의원 체포’에 관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군 관계자의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상식적인 공론장
특집 썰전 1편 후반부 코너 ‘여야의 밤’에서는 여야 의원 4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문답을 주고받았다. 초선과 재선 의원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1편에서는 김한규 제주시을 민주당 의원, 조정훈 마포구갑 국민의힘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의원, 이준석 화성시을 개혁신당 의원이 출연했다.
MC는 의원들에게 각 당의 현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민주당의 현안은 탄핵과 헌법재판관 임명이라고 김한규 민주당 의원이 답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자신은 탄핵을 확신한다면서 선거 모드에 돌입하는 게 현안이라고 말했다. 계엄령에 관해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를 계엄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솔직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 여당 지지율이 계엄 전으로 회복되었다며, 이는 국민은 민주당이 수사와 탄핵 속도를 높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현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이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오히려 다른 일각에서는 수사 속도가 더 빨라야 했다고 주장한다며, 빠른 수사가 힘든 이유는 이번 계엄이 친위 쿠데타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로 간 날카롭고 흥미로운 질의도 오고 갔다. 이준석 의원은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부정선거가 정말 있었냐고 물었다. 조 의원은 파악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다만 부정선거에 대해 걱정하고, 선거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는 유권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모호하게 답했다. 부정선거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거부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핵심 논리다. 여당에 ‘부정선거가 정말 있었냐’는 질문을 시원, 통쾌하게 하는 기회를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시사 토론 프로그램의 의미를 돌아온 썰전이 보여줬다.
에코체임버라는 과제
JTBC뿐만 아니라 다른 지상파 방송국도 현 시국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계엄 사태 다음 날인 12월 4일 화요일, <MBC>의 장수 토론 프로그램 ‘100분 토론’도 비상계엄령을 주제로 긴급 방송했다. <SBS> 간판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도 45년 만의 비상계엄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불방 위기가 있었지만, <KBS> '시사기획 창‘도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라는 제목으로 14일 방송됐다. 특집 썰전처럼 다시 부활한 프로그램도 더 있다. MBC ’손석희의 질문들‘도 설 특집으로 편성되었다. 오는 29일 유시민 작가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탄핵 정국에 대해 맞짱 토론할 예정이다.
그러나 썰전의 경쟁자는 지상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썰전이 멈춘 6년 사이 유튜브가 대안 미디어로서 빠르게 성장했다. 방송사는 물론 신문, 잡지 등도 유튜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곳에선 유명세를 가진 개인이 운영하는 정치 유튜브의 영향력이 월등하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2023년 1월 9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TBS에서 하던 프로그램을 그대로 유튜브에 이식했는데 진행자인 김어준은 작년 한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2위로 선정될 정도로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보수 유튜버 그라운드 씨(GROUND C)의 구독자는 계엄 사태를 거치며 약 30만 명 증가했다. 그라운드 씨는 청년을 대상으로 포럼과 강연을 개최하는데, 계엄 후 ‘민주당이 예산탄핵 정당, 내란 정당’이라고 주장한 영상의 조회 수는 350만 회를 돌파했다.
유튜브가 점차 정치 담론 형성의 중심이 되고 있다. 문제는 알고리즘이다. 유튜브는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결국 시청자는 자신의 성향과 신념에 맞는 정보만 수용하게 된다. 에코체임버 효과는 정치 양극화를 부채질한다. 양극화한 사회일수록 균형 잡힌, 합리적인, 침착한 방송이 간절해진다. 돌아온 썰전에 주목한 이유다.
독한 혀들이 돌아왔다. 독하지만 도를 넘진 않았다. 진보와 보수 패널이 각자의 날 선 주장을 주고 받았지만, 주장에는 근거가 있었다. 물론 항상 평화롭지는 않다. 가끔은 패널끼리 언성을 높이고, 감정이 격양되어 녹화를 중단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툼이 있을지는 몰라도 시청자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진 않는다. 당연히 선동도 없다. 브레이크도 필터도 없는 유튜브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유튜브로 정서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질수록, 정확하고 상식적인 토론의 구심점이 필요하다. 특집 썰전은 갈수록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평가를 받는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