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거석문화와 권력자

▲ 유선희 기자

이집트의 역사고도 룩소르에 남은 2개의 거대 신전 가운데 룩소르 신전 입구에는 오벨리스크 하나가 우뚝 솟았다. 높이 24m나 되는 기둥은 꼭대기로 갈수록 뾰족하게 좁아져 사각뿔의 피라미드 형태로 마무리된다. 하늘의 신과 닿고자 하는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왕조의 태양 숭배 사상을 담는다. 오벨리스크를 지나 신전 안으로 들어서면 어른 여러 명이 손을 맞잡고 둘러설 정도로 굵은 기둥에 둘러싸인 람세스 2세 정원과 100m에 달하는 기둥의 방(列柱室, 열주실)이 나온다. 오벨리스크와 거대 기둥에서 보듯 거석(巨石)문화로 대변되는 이집트 건축은 현실을 다스리는 신, 파라오의 권력과 신성함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수천 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관광 명소로 빈약한 이집트 경제의 버팀목이 돼준다.

이집트 신전뿐 아니라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대 건축물들은 당시 지도자의 위상과 체제의 정통성을 높여주는 잣대로 구실 한다. 독일 나치 정권의 건축가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히틀러의 측근이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허는 ‘폐허 가치 이론’에서 수천 년이 흘러 압도적 폐허로 위대함을 증언하도록 건축물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건축물이 대중을 장악할 수 있는 수단임을 이해한 히틀러는 건축으로 그의 권력을 더욱 구체화했다. 독재자를 드높이고 찬양하는 건축은 추종자에게는 경외와 신비를, 반대파에겐 심리적 위축을 불러온다. 영국 건축 비평가 데얀 수딕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에서 건축은 권력자들의 장난감이라고 지적하며, 그들이 거대 건축물을 남기려는 심리를 가리켜 ‘거대건축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다.

▲ 서울시청사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무수히 받았다. ⓒ Flickr

건축을 정치 선전물의 도구로 사용하는 건 한국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회기반시설로도 대상을 넓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 강 사업,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서울시 신청사와 세빛둥둥섬 등. 우리가 들어본 유명 정치인들의 대형 건축물은 효용성은 물론 미학적 측면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필요치 않은 건물을 도시 계획과 동떨어진 곳에 짓고, 거대 조형물을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한 지자체는 허허벌판에 7억여 원을 들여 대추 모양 화장실을 만들어 ‘필요 없는 곳에 세금을 낭비한다’는 시민들의 빈축을 샀다. 지난해 가을에는 지역 인삼 축제에서 남성 성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됐다가 ‘흉물스럽다’는 비판이 일자 황급히 사라졌다.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 건축물이 ‘아이콘’으로 남길 바라는 권력가들의 욕구가 다수 시민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다. 

수딕은 “권력자들이 건물을 짓는 이유는 그것이 권력자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우선 건축 공사를 벌이면 일자리가 창출되므로 노동자들의 불안을 무마하는 효과가 있다”는 대목에서는 권력자 편에 선다. 정치인들은 정경유착이나 과시용 치적이라는 욕망을 감춘 채 경기 활성화 등을 내세워 대형 건설사업을 몰아붙인다. 그들의 속셈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사업 목적이 정의로운지, 타당성이 있는지, 민주적 절차를 거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옳다. 시민 사회의 감시 활동은 표로 연결돼야 효과가 커진다. 이런 민주적 선순환 구조를 활성화하려면 국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선결 과제다. 헌법 개정논의에서 가장 우선해 다뤄야 할 대목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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