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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측 전화가 울릴 때까지
[역사인문산책] 남북관계
2017년 11월 17일 (금) 18:00:40 유선희 기자 choms335@gmail.com
   
▲ 유선희 기자

오랫동안 우리 쪽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북한이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군사실무접촉을 제안한 게 마지막이다. 남북긴장을 완화하고 군사적 신뢰를 보장하자는 내용이었다. 국방부는 한 시간도 안 돼 ‘비핵화가 먼저’라는 내용의 짧은 입장 자료를 우리 언론에 내놨다. 그것을 끝으로 북한은 ‘통미봉남’을 외치며 우리에게서 등 돌렸다. 이제 북한과 의사소통하려면 판문점에서 확성기를 들고 말해야 한다. 때론 방송과 함께 군사분계선 담장 너머로 쪽지도 던진다. 북한은 우리 측을 예의주시하다 내용을 받아 적거나, 병사가 와서 쪽지를 가져간다. 지구와 우주 사이 영상통화가 가능한 시대에 대화 아닌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남북의 거리는 그보다도 더 멀어 보인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을 거치며 쌓았던 남북 신뢰는 보수 정권 9년을 거치며 송두리째 무너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7일 북한에 남북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개최를 동시 개최하자는 ‘신베를린 선언’으로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손길을 북한은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보기 좋게 뿌리쳤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핵 문제는 철저히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북미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남북 사이에 대화는 사라졌고 군사 위협과 경제 압박만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곁에 있는 한 제재의 효력이 없다는 사실은 간단한 숫자가 말해준다. 지난해 대북제재 유엔 안보리 결의가 두 차례나 있었지만,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전년 대비 4.7% 늘었다. 제재 시류에 편승해 안보 위협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건 북한의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을 강화시켜 줄 뿐이다. 지난 9월, 그 결과로 빚어진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문 대통령은 사드 임시배치를 결정했다. G1자리를 넘보는 중국의 기를 꺾어 힘의 균형을 다시 잡고,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미국 전략에 우리도 동의한 것이다.

   
▲ 민족을 남북으로 가른건 채 50cm도 되지 않는 시멘트 한 줄, 이념, 정치군사적 분쟁이다. ⓒ Flickr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FTA 재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주한미군의 한국 측 분담비를 늘렸으며 무기구매 약속까지 챙겼다. 우리가 얻은 건 트럼프의 말 몇 마디에서 확인되는 외교적 지위 상승과 ‘돈독한’ 한미동맹의 인정이다. 외교 관계에서 경제적 득실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평화와 안보’ 문제가 특정 국가의 이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 압박으로 이뤄지는 대북 제재가 정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독일 역사학자 코젤렉이 <평화>에서 설파한 “정의에 기반하지 않은 평화는 거짓 평화고,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위협적인 강요에 못 이겨 합의된 평화 역시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라는 통찰을 되새길 때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해 핵을 내려놓는다고 해도, 그런 가짜 평화가 얼마나 지속될까?

결국 강조되는 건 신뢰의 회복이다. 북한이 우리와 대화할 의지를 보일 때 동북아 패권 다툼에서 벗어나 국가와 민족의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 신뢰 회복 노력을 구걸로 격하시키는 내부 목소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며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고 말했다. 64년 된 한미동맹도 소중하지만, 수천 년 세월을 함께한 민족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도 중요하다. B.C 108년 고조선의 붕괴 이후 분열과 통일을 반복했던 한민족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화해의 손을 내밀고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는. 판문점과 서해 군 통신선의 우리 측 전화가 울릴 때까지.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박수지 기자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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