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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와 이흑산
[역사인문산책] 다문화
2018년 01월 05일 (금) 21:00:05 안형기 기자 indiepublic@naver.com
   
▲ 안형기 기자

신라 제38대 임금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은 ‘괘릉(掛陵)’이라는 독특한 이름만큼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뽐낸다. 더욱이 사악한 기운을 막고 능을 수호한다는 의미로 세운 석물들은 원성왕릉의 문화사적 가치를 한껏 높여준다. 진묘수와 문인석 조각도 멋스럽지만, 특히 무인석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굵고 숱이 풍성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얼굴을 둘러싸며, 짙은 쌍꺼풀에 큰 눈이 두드러진다. 마치 벨기에의 유명 만화 스머프(the smurfs)에 등장하는 파파 스머프의 모습과 닮았다.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보통 칼을 든 무인석과 달리 도깨비방망이와 흡사한 방망이를 들었다.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의 능에서도 비슷한 모습의 무인석이 왕릉을 지킨다. 

   
▲ 신라 원성왕릉의 서역인 무인석. 굵고 숱이 풍성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얼굴을 둘러싸며, 짙은 쌍꺼풀에 큰 눈이 두드러진다. 도깨비방망이와 흡사한 방망이를 들고 있다. ⓒ 김문환

서양의 조각상에서 방망이를 들고 있다면 헤라클레스뿐이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장사(壯士)였던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죄과를 씻기 위해 12가지 과업을 수행해낸다. 그중 첫째가 네메아의 사자를 처치하는 일. 이를 위해 야생 올리브 나무를 뿌리째 뽑아 방망이를 만들고 무기로 사용한 것이 헤라클레스 방망이의 기원이다. 원성왕릉과 흥덕왕릉의 무인석이 헤라클레스를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 조각됐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그리스 로마 문화예술을 계승한 사산조 페르시아 사람들이 당시 신라와 교류가 잦았던 당나라에 다수 들어와 살았던 점, 8세기 당나라 사신이 위구르 제국으로 추정되는 하서국(河西國) 사람들을 거느리고 신라에 들어왔었던 점에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 신라 사회 분위기다. 헤라클레스의 올리브 방망이를 든 서역인이 왕릉을 호위하는 자리에 오를 만큼 이방인과 외국문화에 문호를 개방했던 신라 사회상은 코즈모폴리터니즘 그 자체다.

2017년 한국에도 낯선 이방인 무인이 주목받는다. 지난 11월 25일에 열린 복싱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둔 압둘라예 아싼, 한국명 이흑산(34)이 그 주인공이다. 고국 카메룬에서 생계를 위해 복싱 선수로 입대했던 그는 월급은커녕 채찍질과 상습적인 구타에 시달렸다.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겪던 그는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출전 기회를 얻어 지구 반대편 한국 땅을 밟는다. 선수단을 빠져나와 곧바로 난민신청을 했으나 기각당했다. 이후 매일 불안 속에 살면서도 지난해 5월 한국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며 20개월의 긴 기다림 끝에 지난해 7월 난민 지위를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 난민 복서 압둘라예 아싼은 지난해 5월 한국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의 전설같은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난민 문제를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줬다. ⓒ EBS1 TV <다큐 시선>

이흑산 선수 사연은 우리 사회의 난민 문제를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줬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란 기적에 가깝다.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하며 선진국으로 도약을 꾀했지만, 실상 난민 인정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 1994년 이후 지난 11월까지 24년간 난민 신청자는 3만 82명에 이른다. 5년 내 10만 명을 넘어 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정된 난민은 고작 3%, 767명으로 바늘구멍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권고한 세계 난민 인정률 37%에 턱없이 못 미친다. 개헌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새 시대 새 헌법’을 위한 관심이 높아진다.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해 망명권 조항을 신설하고, 차별금지 사유에 ‘인종’을 추가해 ‘문화적 다양성’을 명시하려는 개헌안이 제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신라의 서역인 무인석이 주는 낯섦이 이제 다문화가 공존하는 한국의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길 기대해 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조승진 기자 

[안형기 기자]
단비뉴스 편집팀장, 시사현안팀, 청년부 안형기입니다.
나방과 나비, 빛을 찾든 꽃을 찾든 누구나 처절하다.
함부로 손사래 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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