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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사며 지불한 것들에 대해서
[역사인문산책] 커피
2017년 11월 10일 (금) 17:16:45 곽호룡 기자 avoidapuddle@daum.net
   
▲ 곽호룡 기자

커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군시절을 인사과 사무실에서 보냈다. 외부손님에게 커피를 내주는 일은 내 담당이었다. 어느 날 과장이 '사회에서 유행'한다며 원두커피 기계를 들여왔다. 믹스커피보다 만드는 시간이 10배는 더 걸렸다. 늘어난 잡무에 쌓인 불만을 누그러뜨린 것은 손님의 말 한마디였다. "사병, 커피 맛이 참 좋네요."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바뀐 커피는 사무실 분위기까지 변화시켰다.

커피가 '힘'이란 뜻의 에티오피아어 '카파(Kaffa)'에서 유래했듯, 우리는 삶의 활력소가 되길 바라며 커피를 찾는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잠을 깨우고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일이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이 있는 사람은 일을 하기 위해. 소량의 카페인이 지난날 쌓인 피로를 덜 수 있을까? 겨우 몇 시간일지라도 힘을 얻는 시간이다.

   
▲ 많은 사람이 커피의 각성 효과를 빌려 아침잠을 깨우고 하루를 시작한다. © Getty Images

부르디외에게 문화적 취향은 계급을 구별 짓는 장치였지만, ‘커피의 문화’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직업·성별·나이를 넘어 누구나 커피를 즐겨 마신다. 대중화한 문화는 다양한 취향을 고루 만족시킨다. 원액 그대로면 에스프레소, 물에 타면 아메리카노, 우유에 섞으면 카페라테와 카푸치노, 이외에도 첨가물에 따라 수없는 종류가 메뉴판을 채운다. 자유로운 선택은 소비자 몫이다.

그럼에도 '커피의 시대'는 불행하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계약관계와 비슷하다고 봤다. 선물은 증여자의 일방적인 호의에서 끝나는 행위가 아니다. 증여자는 다음번에 더 큰 가치를 가진 선물을 줄 것을 암묵적으로 바란다. 거리에서는 유행에 따라 상품이 교체되고, 모니터창 너머로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선택의 자유’가 안긴 선물. 선택의 자유는 자유롭게 경쟁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는 경쟁에서 진 사람에게 남겨진 불평등과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말라’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였다.

일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 사건'.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 안타까움이 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가계부가 남았다. 10원 단위로 꼼꼼히 적힌 지출 항목에 어려운 삶이 녹아 있었다. 문득 가계부 속, 한 항목에 눈길이 멈췄다. '프리마(3,100)'. 커피 한잔이 그들의 삶에 얼마나 위안이 되어 줬을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웃과 사회의 관심이었는데도....

인스턴트 커피의 풍미를 더하는 프리마는 값싸고 장시간 보관이 용이해 사랑받다가 '웰빙'에 밀려 외면받았다. 낡은 물건은 잊히고 힘없는 존재는 뒤처진다. 자유로운 경쟁이 낳은 결과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론과 달리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를 내버려 두면 방임이 된다. 자유시장은 ‘효율’이 낮은 안전장치에 투자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구의역 비정규직 청년 사망사고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자유에 맡겨 일어난 비극이다.

'제값 주고 샀다.' 물건의 값어치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 매겨진다. 인건비·수송비·매장운영비 등 객관화할 수 있는 수치가 있는가 하면 확정할 수 없는 요소도 있다. 이미지다. 상표는 저마다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이미지를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이미지는 불확정 요소가 많다. 어떤 유행이 올지 저마다 분석하지만 예측하기 쉽지 않다. ‘제값’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 역시 ‘제값’을 모른 체 값싸게 취급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각자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 사회는 값을 매길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

제도는 사회 전반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빈곤으로 시름하던 시절에 비하면 풍요롭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절에 비하면 진보했다. 그러나 "지옥에 살면서 날마다 천국을 생각했다"는 조세희의 난쟁이 가족에게 우리 사회는 천국일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잔에 담긴 검은 커피음료를 보며 커피 열매가 빨갛다는 사실을 잊는다. 상표의 이미지가 값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듯,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회다. 과정이 불편하다면 외면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사각지대는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곳'이 아닐까. 도시 한 가운데 빈민촌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낯설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난한 사람은 일거리를 찾아 도심으로 몰려든다.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 원래는 빨간 커피콩의 모습이다. © Getty Images

리영희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에서 진실을 말한 소년의 용기만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고 짚는다. 그보다 임금님이 백성들 앞에 나서기 전까지 침묵한 어른들의 잘못을 꼬집었다. 일목요연(一目瞭然) 한 번만 봐도 분명히 아는데, 눈과 입을 닫았다.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다고 해도 권력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알렉산더를 지칭했던 헤게모니(지배권력)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정치 권력에서 자본 권력으로, 인터넷 시대에는 플랫폼이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약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곳을 갖기 힘들다.

드라마 <미생>이 공감대를 얻은 이유는 각자의 삶에 주인공이 투영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바둑기사가 되지 못하고 내뱉은 독백이다. 모든 결과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이라는 체념으로 들리기에 슬프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기에 스스로 힘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기댈 곳 없는 사회, 불안감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풍경.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사라졌다. 불행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그 빈자리는 상품이 채운다. 값싼 미래를 맞지 않기 위해, 아침에 마시는 커피가 힘 대신 무력감을 깨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이창우 기자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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