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증세

▲ 박진홍 기자

19세기 오스만 투르크에서 독립해 이집트에 독자 왕조를 세웠던 알바니아 출신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가 야자수에 세금을 물리자, 농민들은 야자수를 베어버렸다. 반면 야자수보다 두 배 많은 세금을 토지에 매겼을 때는 반발이 없었다. 과세할 때는 금액 못지않게 방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진보와 빈곤>에서 이 사례를 소개한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조세원칙 중 하나로 공평성을 꼽는다.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을수록 부담을 많이 지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수혜자’들에 대한 증세는 조세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얻은 이들은 부동산 보유자다. 경실련에 따르면 1964년부터 50년간 쌀값이 45배, 휘발윳값이 62배 오를 동안 민간 소유 땅값은 5,000배가 뛰었다. 국민이 생산해낸 부가가치 총합인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의 4배를 넘는 수치다. 땀이 아닌 땅이 돈을 버는 나라인 셈이다. 땅이 번 돈은 상류층 몫이었음을 수치로 보자. 땅값 상승 불로소득 6,700조원은 상위 1%가 38%(2,551조원), 10%가 83%(5,546조원)을 가져갔다. 땅값이 오르면 주택 분양가‧거래가가 올라가고 임대료,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가진 상류층은 돈을 계속 벌고 땅값 상승에 따른 부담은 집이나 땅 없는 사람들, 자영업자,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 토지보유세를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위키피디아

부동산 보유가 불러온 불평등은 보유세로 푸는 게 공평성을 담보하는 옳은 방법이다.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내리면 불로소득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올리는 상류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 동시에, 불필요한 부동산 매각으로 이어져 실수요자가 혜택을 본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 집 없는 사람이 구매할 수 있고, 걷은 세금으로 정부가 부동산을 매입해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는 지원 정책도 펼 수 있다. 현실은 정 반대다. 2015년 부동산 보유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9조5683억원이었지만, 부동산 취득세로 걷은 세금은 16조8053억원으로 보유세보다 7조원가량 많았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는 국가가 세금을 걷는 목적이자 효과다. 보유세를 배 이상 걷어도 부동산 소득 재분배를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판에, 역주행 세제는 재분배는커녕 불평등을 고착화한다.

헨리 조지는 ‘생산성 혁명’에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빈곤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토지소유자들이 사회가 만든 부를 수탈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경제성장 과실을 가장 많이 가져간 부동산 보유자들은 그대로 두고 슈퍼리치 대상 ‘핀셋 증세’만 내놓은 문재인 정부 조세 정책은 땅 위 야자수에만 세금 매기는 격이 아닐까? 피케티가 지적했듯 21세기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자산 편중이라면 말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순자산 1경2,359조 중 9,136조가 부동산인데 국민 절반은 집이 없다. 참여정부가 종부세 ‘세금 폭탄’ 프레임 때문에 국정 지지율 한 자릿수를 찍었을 때도, 종부세 정책 지지율은 60% 밑으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국민은 무너진 부동산 조세원칙을 바로 세우길 원했고, 지금도 바란다.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면 곁가지보다는 가장 불평등한 기둥부터 과감히 손보는 게 순서다. ‘땅’이 아닌 ‘땀’이 돈을 벌어주는 세상을 위해.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안형기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