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민주주의

   
▲ 이창우 기자

한 사람이 교체되었다. 온 사회는 그를 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의 실천 의지를 내비쳤다.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올해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을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격세지감이다. 공항노조는 지난 2008년부터 공항의 비정규직 위주 운영에 대해 비판하고 싸워왔는데 단 몇 시간 만에 결론이 났다. 삼성, SK, 롯데 등 30대 대기업들도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다. 결코 열릴 것 같지 않던 4대강 수문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개방되었다. 5.18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그토록 목 놓아 외쳐도 바뀔 것 같지 않던 세상이 이젠 하루가 다르다. 예능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새 대통령의 행보에 통쾌함을 느끼다가도 문득 위화감이 든다. 대통령이 다시 바뀌는 순간 지금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을 경험했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아 개혁마저도 실패하고만 한 대통령의 모습을 본 국민들은 '제왕적 대통령'이 어떤 존재인지 잠시 잊어버렸다. 연이어 당선된 두 '제왕적 대통령'은 사정 기관을 포함한 행정부와 방송을 완벽히 장악했다. 국회와 법원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이들로 가득 찼다. '웰빙'을 고민했던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힐링'을 갈구하더니 이젠 '헬조선'을 읊조린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철탑 위에서, 노동 현장에서, 홀로 남은 집에서, 또 바다 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갔다.

▲ 아테네 민주주의의 산실인 민회(에클레시아)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 민회는 페리클리스 시대에 국정 최고 의결기관의 지위가 확립됐다. ⓒ 위키피디아

만약 고대 그리스 시대였다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퇴출당했을 게 뻔하다. 세계사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아테네 사람들은 몇 번의 참주 정치를 겪고 나자 '도편추방제'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참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평화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다. 도편추방 실시 여부는 해마다 아테네 민회에서 결정했다. 아고라에서는 추방할 인물에 대해 격의 없는 토론이 날마다 이어졌다. 추방투표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으며 민주정으로 뽑힌 장군이나 집정관이라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아테네인들은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의 의회격인 500인회(보울레)는 각종 입법과 인사 추천권을 가졌지만 50명이 1개월씩 돌아가며 활동했다. 500인회에서 올라온 안건들의 최종 의결권은 민회, 즉 시민들에게 있었다.

제왕적 권력에 대한 변명을 남긴 사람도 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비록 참주였지만 폴리스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문화발전을 꾀하는 등 아테네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폴 우드러프는 "날씨를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아테네인들은 참주들을 통제할 어떠한 수단도 가지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비평이다. 지금은 권력이 촛불 정신을 따르고 있지만 언젠가 또다시 시대를 역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다. 문 대통령은 여야대표와의 오찬에서 선거구제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형태의 권력 구조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개헌을 통한 권력의 분산을 시사한 것이다. 제왕적 권력의 분산이란 시대정신을 문 대통령이 실현할 수 있을지 기대해도 괜찮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홍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