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민주주의

▲ 임형준 기자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로 불리는 살라미스해전 승리의 주역이다. B.C 480년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전함 330척을 이끌고 페르시아 측 1천 237척에 맞섰다. 그리스 연합군 한 척이 페르시아 전함 셋을 맡아야 승리를 엿볼 수 있는 싸움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폭풍우의 도움까지 얻어 완승을 거뒀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에도 아테네는 안전하지 못했다. 물러난 페르시아가 언제 다시 공세를 취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졌다. 결국 B.C 490년 마라톤 전투의 주역이던 밀티아테스 장군의 아들 키몬의 정치 공세에 밀려 도편추방 당한다. 이듬해에는 페르시아 내통 사건에 연루돼 누명을 썼고, 결국 적국이던 페르시아에 망명하고 만다.

도편추방제는 아테네에서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해 실시한 정치 제도다. 독재자가 될 위험성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도자기 접시에 적어 내는 방식이었다. 시민 6천 명의 찬성이 있으면 해당 인물은 아테네 밖으로 10년간 추방당했다. 변론이나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도편추방제를 악용한 친스파르타 세력에게 당한 것이다. 독재자의 등장을 막기 위한 제도였지만 때로 도편추방제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도편추방제는 오늘날 대통령 중심제의 탄핵제도로 맥을 잇는다. 한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대상으로 올랐다. 지난 대선 기간 당시 러시아가 트럼프에게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이 일자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섰는데, 트럼프가 수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다. 특검팀이 꾸려져 트럼프가 ‘수사외압’을 가했는지 아닌지를 조사 중이다. 트럼프가 탄핵당해야 한다는 여론도 48%로 높다.

▲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리며, 미국 내 사상 최초로 탄핵당할 위기에 놓였다. ⓒ Gettyimages

도편추방제나 오늘날 탄핵제도나 불완전한 측면은 있다. 조국을 구한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는 제도를 악용한 세력에 의해 추방당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역시 비록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됐지만, 국회 제1당의 정략적 노림수로 탄핵 소추당했다. 제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민심과 동떨어진 독재자를 제어하는 국민주권 실현의 근본정신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B.C 487년을 시작으로 아테네에서는 B.C 5세기 13명이 도편추방 당했다. 바로 그 시기 아테네는 민주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듯 ‘그리스 민주주의 학교’로 자리 잡았다. 아니 시공을 초월해 오늘날 탄핵제도로 이어진다. 아테네 시민이 도자기 접시에 이름을 적어 독재자를 추방하지 않았다면,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 탄핵도, 자기 나라 땅이 아니라고 전쟁마저 쉽게 입에 올리는 트럼프를 탄핵하자는 여론도 없지 않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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