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선거

▲ 송승현 기자

19대 대선 사전투표가 이뤄지던 날 페이스북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심상정 후보가 사전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펼친 해시태그 운동 ‘#사전투표했5’ 때문이다. 이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사전투표 인증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걸어 심상정 후보(5번)에게 투표했음을 알렸다. 내가 놀란 이유는 페친(페이스북+친구)의 대부분이 이 운동에 동참한 점이다. 5월 1일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심 후보의 지지율은 11.4%인데, 페이스북만 보면 대통령 당선은 심 후보의 몫이었다.

여론 조사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탓은 아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결과다.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패턴을 파악해 수요에 가장 적합한 정보만을 선별해 제공한다. 이는 페이스북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카카오톡에 공유되는 각종 가짜뉴스 또한 선별된 정보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전면적인 디지털네트워크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경험 지평을 좁게 만든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동성애 반대’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의 발언 이후 20~30대가 주 이용층인 페이스북이 즉각 문 후보를 비판하는 글로 도배됐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할 것으로 보였으나, 소폭 하락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성 소수자 인권에 가장 적극적인 심 후보는 TV토론에서 문 후보를 비판했으나 받아든 득표율은 6.5%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촛불정국이 정치 관심을 높였으나, 투표율은 마의 80%를 넘지 못했다. SNS에서 정치 목소리를 내고, 서로 공감해도 결국 “선거판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 불신 때문일 터다. 결국, 시민들의 요구가 정치권에 전달되지 못하고, SNS상에서만 공유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정치 지형이 건강치 못하다는 증거 아닐까?

강준만은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정치에 대한 회의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진단한다. ‘학습된 무기력’의 원인은 소선거구제도 하에 일어나는 ‘승자독식’의 선거구조다. 승자독식의 선거 구도는 한국의 오랜 병폐 중 하나인 양당제를 고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 지형은 정책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굳어갔다. 원내 정당이 5당이 됐다고 해서, 정치 지형이 다당제로 바뀐 것도 아니다. 지금의 5당 체제는 정책 차별화보다 권력을 둘러싼 이합집산에 더 가깝다. 사표 심리가 버티고 있는 한 유권자의 가치는 현실에 무너지는 구조다. 가치가 담기지 않는 투표용지에 유권자의 바람이 담기기는 어렵다.

▲ 사표 심리를 넘어, 가치가 담기는 투표가 이뤄지려면 선거 제도 개편은 필수다. ⓒ Pixabay

정치의 중심을 인물에서 정당으로 옮기는 일이 처방전이다. 독일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 울림을 준다. 1990년 독일은 높은 실업률 등 일명 ‘독일병’에 시달렸다. 메르켈 총리가 취임한 뒤 문제가 풀린다. 하지만, 이는 메르켈이란 인물의 힘이 아니다. 정당의 힘이었다. 메르켈은 자신과 노선이 달랐던 전임 정부 사회민주당에 연정의 손을 내밀었다. 연정을 통한 의회의 협치는 ‘독일병’ 해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뿐만 아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민자 불안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메르켈 정부는 정책 노선을 바꾼다. 시민의 목소리가 정치에 잘 담긴다는 뜻이다. 협치나 시민 의견수렴의 비결은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독일의 선거제도는 ‘사표 심리’ 대신 ‘가치 지향’투표에 힘을 실어준다.

장미 대선이 끝났고, 한국 정치 지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아 대변혁 중이다. 당선 순간 앞날이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이 41.7%에 그쳤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원활한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취임 보름을 지나면서 우려는 점점 파란불로 바뀌어 간다. 친노, 친문 패권이란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정파를 가리지 않는 고른 인재 등용에서 희망이 보인다. 인사가 만사다. 앞선 정부들에서 보였던 코드인사, 수첩 인사에서 벗어난 탕평 협치 인사가 41.9% 득표의 대통령을 80%가 넘는 국정 수행만족도로 이끌었다. 국정 우선 수행과제 역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해결, 미세먼지 감축, 사드 후폭풍 해결 같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분야부터 앞세운다. 이런 시민 의견 수렴의 정책수행이 SNS에서만 메아리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선거라고 하는 정치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협치나 시민 의견 수렴은 정치지도자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제도화를 통해 정착되기 때문이다. ‘개헌’을 통한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와 함께 ‘선거제도 개편’이 절실한 이유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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