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몸’

▲ 박진영 기자

나는 비염 환자다. 내 코는 공기에 민감해 자동차 매연이 심하거나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은 종일 휴지를 들고 다녀야 한다. 지난여름 제천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공기가 맑은 데 감탄했다. 조그마한 나라에 지역마다 공기의 질이 확연히 차이 난다는 게 신기했다. 몇 달 동안 한적하고 여유로운 제천 풍경을 보며, 소도시에 살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다.

최근 뉴스는 그 생각이 순진했음을 말한다. 서울의대 연구팀이 건강보험 가입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서울 서초구 상위 20% 고소득자의 기대수명이 강원 화천군민보다 15년이나 길게 나왔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공기 맑은 곳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을 보장한다는 결론이다. 언젠가 TV에서 본 화천의 맑은 산하를 떠올리며 왠지 서러워졌다. 인간의 몸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15년은 너무하다. 길 찾기 지도프로그램을 켜서 서울 서초와 강원 화천의 빠른 길을 검색하니, 자동차로 고작 2시간 6분이 걸렸다. 140km, 2시간 6분의 물리적‧시간적 거리 사이에 15년이 있는 것이다. 건강과 계급 간에 존재하는 관계는 통념을 뛰어넘는다. 15년의 간격은 어떤 방법으로 해결될까?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든다.

40년 전, 이미 영국에서 계급에 기초한 건강 불평등 조사가 실시됐다. 혈압과 만성질환 위험에서 사회 계급 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 처음 드러났다. 폐암과 당뇨, 약물중독은 가난한 사람들의 발병률이 부유한 사람보다 20% 높았다. 건강의 불평등은 사회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국가 발전 과정의 우울함을 담은 이 조사는 ‘블랙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문제는 이 보고서를 받아들인 대처 정부의 태도였다. 대처는 ‘블랙 보고서’가 과도한 공공지출을 요구하는 정치적 연구조사라 여겨 무시했다. 도리어 건강 불평등을 문화적‧행태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빈번한 흡연과 과음, 나쁜 식습관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쁜 생활양식과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다. 따라서 건강 불균형 역시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처 정부는 시혜적 성격의 공중 보건 캠페인을 벌였다.

▲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금연 광고들. 건강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귀결한다. ⓒ 보건복지부

TV에서 종일 방송하는 각종 건강 프로그램과 가요를 개사해 연예인들이 노래 부르는 금연‧음주 절제 광고는 공중 보건 캠페인의 세련된 진화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훈계한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선택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데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신선하고 건강한 식품 소비는 고소득 집단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서초구민은 미미한 증상에도 바로 집 앞에 있는 병원에서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서초구 면적의 10배에 육박하는 화천에는 병원이 고작 30개 남짓 있다. 서초구의 5천 개에 견주기도 민망하다. 아마 15년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나는 방학 때 대구에 머물다가 제천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이제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풍경이 도리어 이곳 시민들의 낮은 기대수명의 다른 모습이란 것을 안다. 이 사회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마저 서럽게 만드는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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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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