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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상상사전] ‘몸’
2017년 02월 27일 (월) 23:14:13 박지원 danbi@danbinews.com
   
▲ 박지원

2016년을 휩쓸었던 키워드를 꼽자면 ‘혐오’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여성들은 그동안 여성이라는 굴레 안에서 겪어온 혐오의 실태를 낱낱이 폭로하기 시작했다. 거듭된 폭로의 목소리는 점차 조직화해 ‘메갈리아’, ‘워마드’라는 커뮤니티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분노의 화살을 남성에게 돌리며 그간 사회에서 남성들이 기득권을 누려왔음을 지적했다. 이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혐오에 혐오라는 무기로 대응하는 성별의 전쟁터로 변했다.

사실 나는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에게 더 유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왔다. 초・중학교에 다니던 2000년대 중반은 ‘알파걸’ 돌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외무고시가 존재했던 2005년 최초로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가 전체 합격자의 절반을 넘었다. 이후로도 언론에서는 각종 고등고시나 임용고시에서 여성 강세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곤 했다. 여성 CEO의 성공담이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도 잦았다.

   
▲ 행정자치부에서 공개해 논란이 된 대한민국 출산지도. ⓒ 행정자치부

이처럼 여성의 능력에 주목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알파걸’ 성공신화를 보고 들으며 자란 나는 자연스레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가 매우 높음을 체감했다. 더불어 여자 대학교,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국방 의무 등 여성을 배려하는 사회적 제도와 정책을 접하며 우리 사회는 여성으로서 살기 편한 세상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혐오 논란은 나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기사의 댓글 창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이 폭로한 ‘혐오’들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던 성별의 굴레를 피부로 느꼈다. 왕복 3시간 통학 시간이 아까워 자취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여자가 자취를 하면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단칼에 잘랐다.

취업 전선에 뛰어든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너는 능력이 좋으니 취업 잘 되겠다’가 아니라 ‘남자라서 취업 잘 되니까 부럽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여성으로서 살기 편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녔던 내가, 국가고시 합격자 중 남성 비율이 높은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데 왜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뉴스가 되는지 그제서야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성은 ‘알파걸’이라 추켜세우면서 남성이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당연한 일인 양 ‘알파보이’라고 추켜세우지는 않았다.

이런 물음은 그동안 내가 가졌던 성별 인식을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알파걸’ 신화나 여성 CEO 성공담은 여권 신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성과를 낸 여성과 남성 중 여성을 더 주목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을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고, 합리적 근거 없이 성별에 따라 대우를 다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특정한 한 성별이 특혜를 받거나 불이익을 입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성별이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임의로 선택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요소지만 사회 속에서 남성과 여성은 다시 정의된다. ‘남성적’이라는 말과 ‘여성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은 다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남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와 여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 역시 상반되는 부분이 많다.

기든스로 촉발된 현대 몸의 사회학 역시 몸을 타고난 자연물이라고 생각한 과거와 달리 사회적 공간 속에서 몸이 특정하게 구성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몸을 사회적 담론의 구성물로 파악한 푸코는 사회구성원은 모두 규정된 행동양식을 따르게 되고, 이런 규제는 몸에 각인되며 몸을 통해 실행된다고 보았다. 그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 군대, 감옥과 같은 근대적 조직이 규율에 따라 사회구성원을 통제하고, 사회구성원은 규율화한 주체로 거듭난다고 주장했다.

이를 현대 사회에 적용해 보면 미디어와 같은 연성권력을 들 수 있다. 미디어는 직접 우리의 말과 행동을 규제하지는 않지만 암묵적 언어로 우리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조종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 언론에서 그려지는 남성 리더와 여성 리더의 전형적인 상이 그렇다. 이러한 언어는 사회구성원 사이 담론 형식으로 재생산된다. 담론은 다시 미디어에, 또는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화제로 떠올랐던 혐오 논쟁은 그동안 내 몸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체화해 인지하지 못한 규율의 실체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의 몸은 내 것이지만 사회의 암묵적 규율에 맞춰 움직이는 존재다. 마치 내 것인데도 타인만이 불러주는 내 이름처럼.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9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서강대 재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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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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