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나’

▲ 황금빛 기자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 서른이 돼서야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답이 안 나온다. 소속된 곳이 없는 취업준비생이라서? 어쩌면 소속이 없기에 지금이라도 나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생긴 것은 행운일지 모른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수도원과 정신병동 시설과 같은 ‘전체적 제도’가 자아를 축소한다고 했다. 수도승 또는 입원환자라는 역할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우리는 어쩌면 전체적 제도에서 축소된 자아로 살아왔다.

물리적인 소속이 사라졌다고 나의 자아가 사회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아는 여전히 보이지 않게 축소되고 있다.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학자들, 새로운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신조어를 퍼뜨리는 언론에 의해서다. 요즘 나의 소속은 ‘취준생’을 넘어 ‘흙수저’ ‘N포세대’ ‘혼밥족’(혼자 밥을 즐기는 사람) ‘문송합니다’(인문계열 취업률이 낮아서 나온 말로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정도에 해당하지 않을까? 드디어 소속이 없어 온전히 나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생겼는데, 사회는 다시 나의 소속을 그렇게 말해준다.

사람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든 자기소개서를 쓰든 나를 표현하기 전에는 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 제도에서 벗어나 나 자체만 놓고 고민할 때는 자아분열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동안 내가 속한 현실세계와 내가 희망하던 나 사이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답이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에서 곧잘 좌절하는 이유다. 그래서 자아분열의 기회를 허락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서 나를 찾는 동시에 철학적 사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리스 철학자 세네카도 현실과 희망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인간을 도와주는 수양이 철학이라 했다.

▲ 자아분열의 기회를 허락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서 나를 찾는 동시에 철학적 사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sxc.hu

분열된 자아 때문에 자조하고 냉소하는 것보다, 분열된 자아를 인지하고 자기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나중에 알게 된 현실과 희망의 모순에 좌절해 뒤늦게 분노하는 것보다, 자아분열에 따른 철학적 사유의 기회는 좌절을 딛고 일어나 진짜 나를 찾는 연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게 너야’라고 규정짓는 사회의 정답에 연연하지 말자. ‘나 다운 게 뭔데’ 하고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자. 나를 아는 일이 선행돼야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고 타인과 사회에 대한 여유로운 마음도 가질 수 있다. 분열된 자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좌절을 딛고 행복을 찾으려면.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이 글을 쓴 이는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이며 제7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도 입상했기에 이번에는 수상작으로 뽑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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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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