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성과연봉제’

▲ 김영주 기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에서 모든 것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시장중심사회는 부패하는 성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일도 가격을 매기면,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는 대상으로 평가절하되고 만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시장에서 재화는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교환 대상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

지하철노조 파업으로 논란이 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공기업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환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성과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려면 수익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교육, 의료, 교통 등에서 국민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공공성은 수익이 낮아도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다. 이러한 가치가 효율성이나 수익성을 잣대로 저평가된다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질 수 없다. 지그문트 바우만 등은 <국가의 위기>에서 ‘국가가 가진 사회적 기능까지 경제적 지표로 평가 받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고 썼다.

▲ 지하철노조 파업으로 논란이 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공기업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환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 YTN 화면 갈무리

공공서비스가 약해진 사회에는 각자도생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남는다. 성과연봉제는 개인별로 성과와 보상을 달리해 경쟁을 더욱 극단으로 내몬다. 상대보다 더 잘하기 위한 경쟁은 팀원들 간에 불신을 낳고, 남 일에 발 벗고 나서주는 협업을 어렵게 만든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 간호사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응급상황에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환자를 위해 협력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성과연봉제가 노동자를 통제하거나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이 되리란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줄 조직이 무너지고, 일을 위해 꼭 필요한 협력이 사라진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기업과 개인의 성과를 높이는 데도 성과연봉제는 득보다 실이 크다. 일에서 오는 만족과 보람보다 금전적 보상이 중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돈 버는 재미’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재미’를 모르는 법이다. <성과주의의 허상>이란 책을 쓴 다카하시 노부오는 “성과와 돈이 연결되면 사람은 일 자체에 흥미를 잃고 더 이상 몰입하지 않는다”며 “일에서 의미를 찾고 재미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는 성과와 돈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손실도 크다. 맡은 업무의 비전을 세우기보다 단기 성과를 올리는 데 집중하고, 이 과정에서 편법을 쓰기도 한다.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에 나선 의사는 “줄어든 병원 수익을 채우기 위해 당뇨병 환자의 검진주기를 줄여야 했다”고 실토했다.

"경제는 신이 만들지 않았다. 만일 인간이 시장을 만든 것이라면, 그것을 없애고 보다 친절한 형태로 다시 만들 수는 없을까? 왜 세계는 부지런히 협력하는 벌집이나 개미집이 아니라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원형경기장이어야만 하는가?" 철학자 존 쿳시가 말한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원형경기장’의 잔인함이 성과연봉제가 시행되면서 한층 가혹해질 것이다.

국가가 보장해야 할 공공영역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긴다면 다 함께 고통받는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필요한 사회보장제도를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노조활동으로 승진과 연봉에 피해가 없도록 보장해야 한다. 경제가 말하는 효율성과 수익성으로 모든 가치를 환원할 필요는 없다. 사회보장과 안전, 건강의 가치를 지키는 건 우리 몫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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