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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공공연히 말할 때
[상상사전] ‘몸’
2016년 10월 13일 (목) 21:57:27 김민지 기자 mgone357@naver.com
   
▲ 김민지 기자

늦은 시간 라면을 먹고 체했다. 다음 날부터 소화가 되지 않아 한방병원을 찾았다. 침 맞느라 몸 여기저기를 들추니 부끄럽고 불편했다. 기력이 없으니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몸이 아픈 것보다 소화불량의 이유를 알 수 없어 우울했다. 아플 때는 약을 먹으면 금방 회복된다는 자신감이 약해지면서 일종의 건강염려증 같은 마음의 병이 생긴 것 같다.

무기력해질 때 떠오르는 게 정신분석가 빌헬름 라이히의 말이다. 그는 긴장한 동안 나타나지 않던 고통은 몸이 이완됐을 때 드러난다고 했다. ‘충격적 체험에 반응하는 몸’을 설명하며 ‘우리 삶의 경험이 몸에 체화해 남고 충격적 기억은 성격과 관계하며 반응한다’고 덧붙였다. 내 몸에 새겨진 감정과 기억을 돌아보며 더 아파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내버려둔 몸을 들여다보고 나쁜 식습관을 고치는 시간이었다. 또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이다.

내가 건강할 때는 아픈 친구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함께 과제를 하거나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라면 내 일정에 차질을 주는 것부터 생각했다. 감기몸살이나 소화불량으로 아플 때는 아프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꾀병으로 비쳐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대로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몸이 아파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진정으로 공감한 적이 별로 없다. 아픔을 상상해 ‘빨리 나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오늘 몸 어때’라고 물어봐 주는 친구에게 나쁜 자세 때문에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큰일이네’, ‘빨리 나아’라는 말 대신 종종 안마를 해주었다. 밀가루 음식이나 찬 음식을 간식 메뉴로 정하면 먹을 수 있냐고 물어봐 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의 고통에 응답받은 경험은 따뜻했고 큰 힘이 되었다. 몸이 아픈 뒤에야 공감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국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며 “고통의 문제를 공공연히 말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있다.

   
▲ 나의 고통에 응답받은 경험은 따뜻했고 큰 힘이 되었다.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갈무리. ⓒ 20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제공

몸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body’는 시체를 뜻하기도 한다. 몸과 시체의 차이는 무엇일까? 호흡이 멈추고 몸이 차갑게 식을 때 생명이 끝난다. 심장이 멈추지 않아도 활력 있는 삶이 끝날 때가 있다. 건강과 감정을 내버려두며 생존기계로 하루하루를 버틸 때 시간이 하나도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통에 민감할 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사람 몸에는 100조 개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가 산다. 인체 세포의 10배가 넘는 숫자다. <10퍼센트 인간>을 쓴 앨러나 콜렌은 세포 수로는 우리 몸에서 불과 10%를 차지하는 인간이 절대다수인 미생물과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지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완전하고 건강한 몸은 없다. 공감하고 반응하는 ‘우리’가 있을 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신혜연 기자

[김민지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전략부, 환경팀 김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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