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국가

▲ 김현우 기자

뒤에서 친구들이 속삭이자 화학선생이 분필을 던진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소리가 들리자 선생의 태도가 바뀌었다. “떠든 놈 앞으로 나와.” 화학선생은 절연테이프로 대걸레 자루를 감싼 ‘사랑의 매’를 들고 다녔다. 그러나 이날 선생은 매 대신 손바닥과 주먹으로 학생을 때렸다.

학생은 현장의 관객이었다. 무대의 주인공은 화학선생 그리고 떠들었다고 추정되는 학생이다. 사랑의 매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관객을 속인 ‘맥거핀’이었다. 화학선생의 인자한 눈웃음, 살짝 올라간 입가, 꽉 쥔 두 손, 그리고 구타. 쪽지와 핸드폰으로 공포는 삽시간에 퍼졌다. 매를 맞은 학생은 짝에게 분자량 단위인 ‘몰’을 물어봤다고 해명했지만 구타는 이어졌다.

공포는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다. 이 본능은 직접 충격을 받지 않아도 반응한다. 한 사람이 넘어져 생긴 통증 신호는 이를 목격한 이에게도 전달된다. 뉴런을 통한 ‘정서적 모방’, 공포가 전염되는 원리다. 화학선생은 공포를 충실히 이용했다. 이후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도, 질문하는 학생도 없었다.

▲ 교실과 내무반은 흡사한 구조다. ⓒ flickr

한국의 한 학급은 정ㆍ부 담임교사와 학생들로 구성된다. 한 소대가 장교인 소대장과 부소대장인 부사관, 그리고 병으로 이뤄진 것과 같다. 한국 학생은 학교에서부터 중앙집권적 군 편제생활을 경험한다. ‘중앙’의 지시를 어기면 징계나 체벌을 받는다. ‘연대책임’이라는 명목으로 한 분단이 단체기합을 받기도 한다. 교사 지시를 자주 어기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은 ‘고문관’으로 찍힌다. 고문관은 주변 사람들의 감시를 받거나 심하면 왕따를 당한다. 징계나 체벌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그 공포를 피하기 위해 서로 감시하는 지경에 이른다. ‘원형감옥’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원형감옥을 몸으로 배워온 셈이다.

원형감옥에서 ‘비상식적인 사람’은 주변 사람을 귀찮게 한다. 원형감옥에서 ‘상식적인 사람’은 공포를 겪기 싫어한다. 시끄러운 사람과 엮이기 싫다는 이유로 국가 권력의 비이성에 눈감아버린다. 근거조차도 부실한 국가 권력의 말에 고개부터 끄덕이기도 한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고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것이 물대포가 아닌 빨간 우비란 헛소문도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사람에게 ‘지겹다’고 말하는 데도 일리가 있다고 수긍한다. 민주주의의 전제인 다원주의를 무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도 찬성 논리를 받아들인다. 다수의 표를 획득한 대통령과 여당국회의원, 판매부수 1등 신문의 말까지, 권력의 말을 ‘그럴 듯하다’고 여긴다.

국가 권력은 교묘하다. 폭력의 현장을 보여줘 공포를 일으킨다. ‘비용과 시간’의 프로파간다로 시민 사이에서 수평적, 암묵적 비난이 일게 한다. 몇 십조 원, 일자리 몇 십만 개 따위 숫자를 들먹인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불의를 정당화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절차인 합의와 타협은 간데없다. 군사독재시절에는 안보를 명분으로, 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지금은 실체 없는 ‘경제성’이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국가 권력을 가차없이 행사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학선생은 직무를 유기했다. 시민사회에 걸맞은 교양시민을 길러내기는커녕 공포에 가득 찬 원형감옥을 조성했다. 대한민국 교육의 목적이라는 교양시민 육성은 허울뿐이었다. 공포에 굴종하는 방법만 알려줬다. 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의 5번째 핵실험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은 단결을 위해 내부의 불순세력을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사드 배치 말고 다른 대안을 내놓으라던 대통령은 이미 답을 정해뒀다. 애초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시민은 물론 이른바 ‘외부세력’과도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제3지역 배치로 애초에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했던 시민을 ‘님비’로 모는 건 덤이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란 문장으로 끝난다. 국가 권력에 저항하던 사람이 고문을 통해 ‘열성 애국자’로 태어난 과정이었다. 상상 속의 1984년이 현실의 한국에서 재현되는 것 같아 두렵다. 국가 권력의 교묘한 공포정치와 원형감옥에 가두는 일이 일상화한다면 시민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의무의 주체로만 남게 될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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