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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강조하는 시대는 왜 살기 힘든가
[상상사전] ‘국가’
2016년 09월 27일 (화) 13:52:37 서혜미 기자 weselson_@naver.com
   
▲ 서혜미

밀라노칙령 전까지 기독교인들은 재산 몰수, 시민권 박탈, 사형 등 가혹한 처벌을 받는 일이 흔했다. 로마제국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는 신자들을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먹잇감으로 던져주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 성인 중에 사자밥이 된 사람이 많은 이유다. 기독교는 수백 년에 걸쳐 박해받았지만,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처럼 순교자 수가 늘수록 신자 수도 늘어 마침내 국교가 됐다.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신라 법흥왕 때 이차돈은 불교 공인을 위해 참수를 선택했다. 모든 종교는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더욱 세력이 강해진다.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교세가 큰 종교는 ‘국가교’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다카하시 데츠야에 따르면 국가는 ‘세속화한 신’이다. 종교는 신을 위한 죽음을 값지게 여긴다. 국가가 신의 자리를 차지한 뒤 국가를 위해 죽는 일은 더없이 신성한 일이 됐다. 신앙과 애국, 순교자와 순국자는 다르지 않다. 정부, 기업, 학교, 시민단체의 공식행사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빠지지 않는다. 국가를 위한 희생은 그 국가의 발전과 번영의 주춧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립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을 기린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도 마찬가지다.

   
▲ 한국의 국립현충원은 국가를 위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 flickr

신을 강조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어느 시대든 신이 일상을 압도할 때 불행이 닥친다. 중세는 예수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이라는 대규모 약탈을 자행했고, 근현대에는 국가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 삶을 파괴한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숭고한 희생 때문에 체제는 정통성을 얻는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쳤으므로 선조의 뜻을 본받아 종교나 나라를 수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참한 실상과 원인 제공자의 책임은 사라진다. 그 대신 언제라도 시민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만 남는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이 존재할 리도, 개인이 행복할 리도 없다.

대통령이 나서서 ‘애국’이라는 신앙을 전파하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조국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을, 올해 봄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두고 “젊은이에게 애국심을 고취”한다고 말했다. 2년 전에는 <국제시장>의 주인공들이 부부싸움을 하던 중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는 일관되게 애국과 희생, 올바른 국가관, 국민의 단합을 강조한다. 이 정부 들어 사회적 소통망(SNS)에 군복과 군화 사진을 올리며 언제든 참전하겠다고 밝히는 청년들이 많은 건 예정된 귀결일지 모른다.

태평성대로 꼽히는 요순시대에 백성들은 ‘격양가’를 불렀다고 한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내용이다. 태평성대는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지 않았고, 제 할 일을 다 해 사람들 사이에서 국가의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했다. 격양가의 고사를 떠올린다면, 지금처럼 국가를 강조하는 시대는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희영 기자

[서혜미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장, 편집부, 전략부 서혜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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