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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역 차이나타운 단상
[마음을 흔든 책] 김현미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2015년 10월 19일 (월) 09:50:12 강명연 기자 unsaid@naver.com

두 달 전 대림역 부근을 지나친 적이 있다. 서울의 대표적 차이나타운답게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한자로 된 간판이 즐비했다. 거리는 일상에서 마주쳤던 조선족 식당 종업원, 화장품 매장 판매원들로부터 받았던 친근한 이미지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개인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발표에 따르면, 2015년 1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174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10년 사이 3배가 넘는 증가세를 보일 만큼 그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번화한 대림역 조선족 거리는 한국 내 외국인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결혼이주 여성 증가에 따른 다문화가정 자녀의 사회 적응 문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와 사회적 멸시 등 차별 문제도 한국사회의 주요한 갈등 요소로 지적된 지 오래다.

   
▲ 서울 대림역에는 조선족과 중국인이 모여있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있다. ⓒ 강명연

지난해 2월 출간된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는 결혼이주 여성, 경제 이주자, 조선족 동포,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 등 한국에서 ‘우리’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이주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지난 6월 양파가공공장에 근무하는 조선족이 자신을 무시하던 한국인을 살해하는 등 이주자 급증에 따른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저자인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한국 내 이주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외국인 이주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력난과 결혼난이 불러들인 이주자들

저자는 정부가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외국인 이주자를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국내 노동자 임금이 급격히 상승했고 정부 주도 아래 대자본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 재편이 이루어졌다. 사양산업으로 간주된 경공업 분야에 대해 은행대출을 포함한 국가적 지원이 급격히 줄었다.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여력이 없는 대부분의 열악한 제조업체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어야 했다. 대부분 힘들고 위험한, 소위 3D직종의 중소업체들이었고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로 인력난을 해소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인력난 방관이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시켰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구학적 측면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 결혼 시장의 성비 불균형으로 국제결혼이 유행하며 외국인 이주자가 급증했다. 남아선호가 강한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1960년대부터 강력하게 집행된 가족계획 정책은 심각한 남녀성비 불균형을 초래했고, 가난한 도시 저소득층 남성과 농촌 남성의 결혼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앙 정부와 지역 자치단체도 가사노동, 육아, 노인 돌봄 등 노동력 문제를 사회적 차원의 제도화를 통해 해결하려 하기보다 국제결혼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으로 풀고자 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 1987년에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 국내 노동자 임금이 크게 상승했다. 높은 임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중소업체들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인력난을 해소했다. 노동자 대투쟁 당시 울산 지역의 파업 투쟁 모습.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불법’ 노동자없이 우리 소비생활 불가능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가 시행되기 전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관광이나 사업 목적으로 들어와 취업한 ‘불법’ 체류자였다. 책에서 소개하는 네팔인 라이 씨는 1991년 한국에 입국해 줄곧 ‘불법’ 노동자로 살아왔다. ‘불법’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매일 단속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라이 씨는 비록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지만 성실함과 엄격한 생활습관을 잃지 않는다. 아침마다 산에 오르고 격주로 봉사활동을 하는 등 규칙적인 자기관리를 하는 라이 씨를 저자는 경이로운 감정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고백한다. 다른 ‘불법’ 노동자들처럼 불법 초과 체류를 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성실한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라이 씨 같은 ‘불법’ 이주노동자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위험한 노동, 장시간 노동, 저임금과 임금 체불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불법’이라는 딱지는 한국인과 평등한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기도 한다.

저자는 국가권력이 ‘불법’ 이주노동을 방치했다고 지적한다. 값싼 노동력에 대한 국내 수요가 증가함에도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합법화하지 않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감당하고 국가가 복지와 사회 통합을 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노동력이다. 이들의 싼 임금 없이는 생필품의 생산과 소비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들의 노동력에 기대어 만들어진 물건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저비용의 생산과 소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질서에서 각국 정부가 불법적인 이들의 존재를 묵인하고 방관해왔다고 저자는 비판했다.

민족과 국적을 동일시하면서 주변인 취급받는 조선족

조선족은 한국 내 외국인 거주자 중 약 40%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조선족 중년 여성은 한국의 가정집, 식당, 병원, 요양원, 찜질방 등에서, 조선족 남성은 아파트 단지, 올림픽 주경기장, 월드컵 축구장, 4대강 공사장 등 건설과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한다. 대부분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저자는 조선족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1세대 이주자인 이들은 ‘불법 이주 단속과 적발, 비자 위조를 통한 한국행 러시, 이주 관련 취업 사기’ 등 이주사의 ‘어두운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고 견뎌낸 사람들이다. 조선족 이주자들은 2007년에 이르러서야 방문취업제를 통해 합법적 체류를 보장받게 되었다.

   
▲ 국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조선족이다. 2012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진주 혁신도시 건설현장에 방문한 모습. ⓒ flickr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급격한 체제 변화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들은 한국 이주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고자 했지만, 한국에서 강요된 주변자적 위치와 차별 때문에 불안정안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방문취업제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조선족은 중국에서의 직업·학력과 상관없이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서비스업에서만 일할 수 있다. 방문취업제는 조선족이 한국에 정착해 안전한 노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고, 이들이 처한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과 관리조차 없기 때문에 전 지구적 노동유연화의 한 형태일 뿐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조선족 결혼이주 여성 하영란 씨는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동정하는 한국인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우리 조선족도 하나의 개인으로서 강한 의지, 신념, 능력, 자존심 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영국 런던에서 만난 조선족 사례를 제시한다. 그들은 ‘남한 사람에게 차별받는 것 외엔’ 일상생활에서는 영국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이는 영국 사회가 오랜 기간 구축해온 이주자 친화적인 인종적·문화적 다양화 정책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국은 민족과 국적을 동일시하며 조선족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하면서도 여전히 조선족을 주변인으로 몰아내고 있을 뿐이다.

체류기간은 늘었으나 여전한 기업들의 인식

1993년부터 시행된 산업연수생제도로 외국인 노동자는 합법화됐다. 법은 이들의 지위를 노동자가 아닌 산업연수생으로 규정했다. 산업연수생들은 최저임금이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보험제도,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노동자의 그 어떤 권리 보장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해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됐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노동자를 연수생이 아닌 근로자 자격으로 데려오는 초빙 노동자 제도다.

   
▲ 이주노동자는 우리나라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 줄뿐만 아니라 본국의 문화를 한국에 전파함으로써 한국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돌배게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시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 등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최대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지만 사업장의 휴·폐업, 임금 체불 같은 불가피한 사유 없이 계약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이는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 권리인 노동자의 취업 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주노동자는 우리나라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 줄뿐만 아니라 본국의 문화를 한국에 전파함으로써 한국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을 고용한 한국 사업장들은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식’ 노사 관계와 관행을 강요한다. 값싼 외국인 노동인력이 없다면 한국의 영세 작업장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자금 여력이 없는데도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도구화하면서 이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주지 않는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산업 구조의 필수 요소로 여기고 이들의 장기 체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숙련 인력 유출을 우려하는 기업주의 요청에 따라 정부는 2012년부터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재입국을 허용하는 ‘성실근로자 재입국취업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노동자는 9년 8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게 됐지만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사업장의 한국식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주자 인권운동, 우리사회 민주화에 기여

시민사회와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NGO는 2003년부터 한국인의 외국인 차별, 폭력, 혐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기 위해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7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하면서 다문화 담론을 국제결혼 가족 지원정책과 구별하지 않은 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정부가 다문화 담론을 결혼 이주자와 다문화 가족에 대한 담론으로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2006년 4월에 이르러 한국 정부가 선언한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은 이주노동자를 포용하지 못한 채 정착형 이주자인 결혼이주자 여성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적응하게 만들려는 정부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문화 가족’ 정책으로 환원된 다문화주의는 다른 분야에서도 논의의 영역을 축소시켰다. 담론의 축소는 다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정치·자본가 세력은 교육과 대중매체를 이용해 끊임없이 적을 상정하고 배제하는 ‘문화적 세뇌’를 통해 인권, 평등, 민주, 개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당연히 기본적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이주자는 손쉬운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 인권 침해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주자 인권운동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편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자국의 노사관계, 물품과 서비스, 미적 가치관 등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문화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선진국에 대한 편협한 사대주의나 성찰 없는 글로벌 물신주의가 아니라, 이주자들의 문화자원을 확장함으로써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그 동안 이주자를 국가의 시선에서 자본의 이해관계로 바라보았지만, 동일한 공간에 거주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이 서로 교류 공생하며 각자의 정체성을 재규정하는 과정이 다문화 사회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 외국인은 한국에 자국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 flickr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외국인 이주자는 서울 구로동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조선족이었다. 조선족이라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 그는 성격 좋고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 이주자는 이미 한국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이주자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선입견과 그로인한 차별이 두려워서일 테다. 우리 사회가 이주자를 이웃으로 여길 때 이주자 문제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도 가능해지고 진정한 다문화사회도 실현될 것이다. 제 발로 낯선 곳에 찾아간 이방인은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모험심과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책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나본 경험이 있다. 혹시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면 익숙한 공간에서 잠시 벗어나 오늘 대림역을 가 보라.


 

[강명연 기자]
단비뉴스 미디어팀 강명연 기자입니다.
강자의 힘은 폭력이지만 약자의 힘은 평등이라 믿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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