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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여 쪽 재판기록으로 돌아본 ‘그날’
[마음을 흔든 책]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2015년 03월 28일 (토) 21:59:01 박세라 기자 sera1862@gmail.com

앞으로 20여일이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된다. 사고 이후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지고 무능한 정부에 분노했지만 한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실종자를 찾기 위한 선체인양과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등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에서 활동해 온 오준호(40) 작가가 경기도 안산과 전라남도 광주의 법정을 오가며 ‘기록’에 몰두한 것은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10일 세월호 선원 첫 공판준비 기일부터 11월 11월 1심 선고공판까지 33차례 광주의 재판정과 안산의 중계법정을 오가며 사고경위와 구조실패의 ‘진실’을 규명해 줄 실마리들을 촘촘히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세월호를 기록하다>란 책으로 지난 20일 펴냈다.

150여일에 걸쳐 진행된 1심 재판은 3만여 쪽에 이르는 법정기록을 남겼다. 작가는 이를 330여 쪽의 책으로 압축했다. ‘사실’이라는 씨줄과 날줄을 시간의 흐름 순서로 엮은 이 책은 비극의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절절히 전한다. 물론 모든 진실이 법정에서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재판은 위법 여부만을 따지기 때문에 사고 원인 중 정치적, 사회적, 구조적 요인이 있더라도 법률 위반이 아니면 현행법으로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러나 작가는 수많은 증거와 증언이 모이고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재판과정에서 진실의 퍼즐 조각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자세가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작업이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 오준호의 <세월호를 기록하다> 표지. ⓒ 미지북스

구조의 손길 믿고 서로 도우며 기다렸던 사람들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자 부두에 묶여있던 배에 활기가 돌았다.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밤 9시, 안개 시정주의보가 해제되자 인천항에 서 있던 세월호는 출항의 뱃고동을 울렸다. 배에는 부푼 마음으로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향하던 가족들, 일터로 가는 트럭운전사 등이 타고 있었다. 여행의 기대, 새 삶의 희망, 생계의 무게 등을 함께 싣고 세월호는 제주도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8시 30분에서 37분 사이 세월호는 진도 울돌목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거센 맹골수도를 통과했고, 8시 48분경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해상을 지나고 있었다. 1분 후 배가 왼편으로 약간, 그러다가 갑자기 크게 기울었다. 배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좌현 출구로 굴러 떨어졌고 소파가 미끄러져 여학생이 얼굴을 맞았다. 편의점 냉장고가 학생들을 덮쳤고 뚜껑이 열린 온수통은 화물트럭기사의 팔 다리로 뜨거운 물을 쏟았다. 

세월호에서 가장 큰 방인 3층 다인실에 있던 승객들은 바로 탈출을 시도했다. 배가 기울었던 초기에 서로 목마를 태워 좁은 통로로 내보냈고, 먼저 올라간 사람이 모포나 구명조끼를 던져 다른 사람을 끌어 올렸다. 이때 “가만히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이 시작돼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고 박수현 군이 남긴 약 15분 길이의 동영상은 학생들이 방송 지시에 따라 가만히 대기하며 애써 공포를 털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1분에 한 번꼴로 반복되던 대기 지시 방송은 오전 9시 50분까지 한 시간이나 이어진다. 생존한 승무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 종사자들에게 비상 방송 매뉴얼은 없었다. 매뉴얼뿐 아니라 경험을 이용해 승객들을 구출할 지휘체계도 없었다. 해경 구조대가 도착할 무렵 선내 방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탈출하라’는 방송 역시 나오지 않았다. 단원고의 한 학생은 오전 10시 17분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사고 즉시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위험한 상황이 됐을까. 승객들은 스스로 구명조끼를 찾아 서로서로 전달해 입었고 차분히 구조를 기다렸다. 서로를 격려하며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선원과 해경은 ‘너무 당황하여’ 적절한 구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승객들도 죽음의 공포를 누르고 침착하게 대응했는데 말이다.

‘최첨단 시스템’ 자랑하곤 아무도 못 구한 해경 

작가는 사고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사람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던 상황을 여러 정황과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해상교통의 흐름을 파악하고 조정해야 하지만 당일 오전 9시까지 사고 사실을 몰랐다. 당연히 가까운 곳에 있는 경비정 및 어선 등에 사고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오전 9시 6분쯤에야 진도VTS는 세월호를 뒤따라오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에 구조 협조를 요청했다. 9시 11분 둘라에이스호는 사고 현장으로부터 0.5마일(약 804미터) 앞에 도착했다. 둘라에이스호 선장은 법정에서 “세월호에서 사람들이 탈출한다면 둘라에이스호에 그들을 태울 공간이 있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탈출한다면 세월호에 탄 사람 전부를 구조할 공간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당시 진도VTS는 “주변에 구조선이 있으니 사람들을 탈출시키라”고 세월호에 알리지 않았다. 둘라에이스호에 “근처에서 탈출하는 사람을 안전하게 구조하시기 바란다”고만 전했다. 둘라에이스호가 “하여간 빨리 탈출을 시키라”고 재촉했지만, 진도VTS는 교신하던 세월호 선원에게 “(탈출 여부를)직접 판단하라”고 결정을 미뤘다. 

이때 세월호 조타실에서는 1등항해사, 조타수, 2등항해사가 서로 번갈아 진도VTS와 교신하며 우왕좌왕의 극치를 보였다. 진도VTS도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묻는 세월호 선원에게 “10분 후에 경비정이 도착한다”고만 말했다. 둘라에이스호가 부근에 이미 대기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9시 27분경 목포항공대 헬기(B-511호)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갑판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항공구조사는 선내에 구조해야 할 승객이 많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 

수백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해경 등 구조당국과 세월호 선원들은 총체적인 소통의 난조를 보였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졌다. 저자는 <2013년 해양경찰 백서>에서 해경이  “대형사고에 대비해 무선 양방향 헬멧형 헤드셋을 개발하는 등 현장 출동세력과 지휘부 사이에 최첨단 통신 시스템을 구축해 현장 지휘능력을 높였다”고 자랑했던 사실을 꼬집었다. 해경의 ‘자화자찬’과 세월호 구조의 부실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이 무력감 느낀다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어떤 행위가 범죄 구성요건을 완전히 갖추는 일을 법률 용어로 기수(旣遂)라고 한다. 재판부는 세월호의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전부에게 승객에 대한 유기치사, 유기치사상의 유죄를 인정했다. 유기죄가 성립된 ‘기수’의 시점은 사고 당일 오전 9시 26분경이라고 밝혔다. 배가 기울기 시작한 초반에는 선원들도 당황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도 9시 26분경에는 승객을 갑판으로 유도했어야 한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이 시각 선내에서 이동이 불가능하지 않았으며, 대피에 필요한 도구의 위치 등을 잘 아는 승무원들이 마땅히 구조와 구호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원들이 운항 경험과 지식을 통해 배가 침몰할 위험을 알았으면서도 승객을 구조할 의무를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저자는 “이들이 선장이나 기관장의 구조 지시가 없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휴대폰이나 선내 전화로 조타실에 연락해 자신들이 무엇을 하면 되는지 물어볼 수 있었고 지시를 내려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도 있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선원들을 비판했다. 

피고인들에 대한 구형을 남기고 공판 절차가 거의 마무리된 지난해 10월 21일, 법정에서는 실종된 교사의 아내, 생존 학생의 아버지, 숨진 학생의 여동생 등 열다섯 명의 피해자 가족이 증언석에 섰다. 그들은 가슴 속에 응어리 진 말들을 쏟아 냈다. 피해자 진술이 끝나자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단원고 2학년 8반 학생들의 동영상을 시청하겠다고 안내했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동영상을 본 후 재판장이 마무리 인사를 하고 다음 재판을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장은 “재판부원들과 함께 영상을 미리 보았을 때 너무 슬펐다”며 “동영상을 본 다음에 인사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피해자와 가족들에 인사를 미리 드리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세월호 재판이 ‘진실로 향하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지만 재판이 가진 한계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9.11테러와 호주 빅토리아주 산불사고 등에 대해 민간조사기구가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토대로 진상규명 활동을 벌인 것처럼, 세월호 사고 역시 형사 재판을 넘어선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형사 재판은 드러난 증거를 기준으로 범죄자의 형량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판에만 의존하면 이 사고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우려다.  

   
▲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100일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모여있다. 저자는 동료와 시민에 대한 연대를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슬픈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 배상철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들은 어린 학생 등 수백명이 바다에 가라앉는 것을 눈앞에서 빤히 보고도 구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고와 구조실패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평화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국민이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이렇게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가려내고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구조적인 불의에 맞서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 두 번 다시 무력해지지 말자”는 촉구와 다짐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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