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오언 존스 '차브'(Chavs)

왜 한 소녀는 다른 소녀보다 중요한가

두 소녀가 있었다. 2007년 5월 마들렌 맥캔은 침대에서 잠을 자다 사라졌고, 2008년 2월 섀넌 매튜스는 수영강습을 받고 오던 길에 실종됐다. 두 소녀 모두 저항할 힘이 없는 어린애들이었지만, 세간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다국적기업들은 ‘마들렌을 찾아주세요’라는 광고를 웹사이트에 실었고, 아이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영국 전역에 내걸렸다. 의회의원들은 아이가 부모 품에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노란 리본을 달았다. 하지만 섀넌 매튜스를 위해서는 아무도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았고 그 어떤 광고 포스터도 없었다. 차이점이라면 소녀들의 계급뿐이었다. 

▲ 단정한 옷차림을 한 마들렌 맥캔의 부모는 호감가는 외모를 지닌 중간계급이었다(위). 반면 매튜스 부인은 화장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냈다(아래). ⓒ flickr(위) ⓒ ODN 뉴스 화면 갈무리(아래)

마들렌 가족은 쾌적한 외곽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는 중간계급 가정의 이상적 표본이었다. 반면 잉글랜드 북부 낙후지역에 사는 매튜스 부인은 5명의 남자와 7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직업이 없었고 슈퍼마켓에서 생선을 파는 남자와 동거 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섀넌 매튜스는 실종된 지 두 달 만에 산 채로 발견됐으나 곧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매튜스 부인은 현상금을 노리고 자신의 딸을 납치하는 자작극을 벌인 것이었다. 기자들과 정치인들의 집중포화가 시작됐다. 한 개인이 아니라 그녀의 출신과 계급에 대한 공격이었다. 가난한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섀넌을 찾기 위해 빗속을 뚫고 전단을 돌렸다는 사실은 간과된 채 노동계급은 무능하고 타락한 ‘야생의 하층계급’으로 묘사됐다. 노동계급 전체를 악마화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노동계급을 멸시하는 일이 영국사회의 흔한 현상이 된 지 오래다.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 말인 ‘차브’(Chavs)는 대중적 단어가 됐다. ‘차브타운스’(ChavsTwons)라는 웹사이트에서는 경쟁적으로 차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차브의 인생 가이드북>(The Chav Guide to Life) 이라는 책은 차브들이 “시끄럽고, 저급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영세민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가난한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며, 실업수당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총을 쏴 차브들을 죽이는 ‘차브 헌터’라는 컴퓨터 게임까지 등장했다. 차브 혐오 현상 아래서 노동계급은 폭력적이고 게으르고 무능하며 성적으로 문란한 구제불능의 인간군상이다. 그들은 더러운 공영주택에 살며 실업수당을 받고 정부 예산을 축낸다.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대리석 속의 천사’라고 불렀던, 한때 ‘지구의 소금’이라 칭송받던 노동계급은 온데간데없고 경멸과 멸시만 가득하다. 왜 노동계급을 멸시하는 일이 공공연한 일이 되었는가?

▲ 영국 시트콤 <리틀 브리튼>의 비키 폴라드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태도가 불량한 노동계급 10대 싱글맘이다. 그녀는 보이밴드의 CD와 자기 아이를 바꾸기도 하고, 아이를 데려가라는 말에는 이렇게 대꾸한다. "괜찮아요. 그냥 가지세요. 어차피 집에도 많이 있는 걸요." ⓒ BBC 홈페이지

영국의 정치평론가이자 <가디언> 칼럼니스트인 오언 존스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출발한다. 오언 존스는 <차브>에서 차브 혐오는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영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최하층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하는 전통적 방법이다. 특히 저자는 노동계급이 악마화한 원인을 영국 계급전쟁에서 찾는다. 영국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계급 전쟁을 수행한 대처리즘이 그 주인공이다. 

“가난은 성격과 인품의 결함일 뿐이다”

노동계급에 대한 전면 공격은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 1979년에 시작됐다. 노동조합은 무력화했고, 제조업이 무너지며 노동계급의 일터는 망가졌다. 저자는 서구의 다른 어떤 나라도 제조업이 그렇듯 단기간에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노동계급의 주류였던 광부, 부두 노동자, 자동차 노동자들은 유대감을 잃고 개별적 존재가 되어 흩어졌다. 노동자들의 공동체는 산산이 부서졌고, 문화적 정체성과 연대의식도 실종됐다. 힘을 잃은 노동계급은 조롱거리로 추락했다. 더는 노동계급은 존경할 만한 무엇이 아니라 벗어나야만 하는 계급으로 전락했다. 대처의 목표는 계급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대처 집권 즈음 노동자의 절반이던 노조원은 1995년에 3분의 1로 줄었다. 

대처리즘은 대안을 약속했다. 노동계급 대신 번영의 중간계급 시대를 맞이하자는 것이었다. 공동체와 함께 발전하는 인간이 되려는 열망 대신 소유에 따라 성공을 판단하는 문화가 장려됐다. 대처에 따르면 계급의 관점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끌어올려야 한다. 만약 누군가 가난하다면, 그건 그들의 개인적 실패일 따름이다. “오늘날 이 나라에 근원적인 가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처의 생각이었다. “가난은 정말 근본적으로 성격과 인품의 결함일 뿐이다.” 이것이 대처의 낭랑한 목소리였다. 

▲ 마거릿 대처는 노동계급의 정체성 자체를 맹공격하며 영국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계급 전쟁을 수행했다. ⓒ flickr

노동계급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 헌신해야 할 신노동당조차 대처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오히려 그들의 철학은 노동계급을 회피하는 데 있었다. 2010년 총선 당시 TV를 통해 방영된 ‘고집불통 게이트’는 신노동당의 노동계급을 향한 경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고든 브라운 노동당수가 연금생활자 질리언 더피 부인과 우연히 마주친 사건이다. 경제 현안과 이민자 대책을 꼬치꼬치 묻는 더피 부인과 대화를 마친 뒤 방송사 마이크가 옷깃에 꽂혀 있다는 것을 깜박한 브라운이 성가시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끔찍하군. 제발 저런 여자한테 데려가지 말게. 그 여자는 고집불통인데 자기가 노동당 지지자라고 하더군. 웃기는 일이지.” 역설적이게도 우파뿐 아니라 좌파로부터 노동계급은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저자는 신노동당 정책들이 무능하고 비정상적이며 열망이 없다는 일련의 차브 이미지를 노동계급에 부여하는 데 기여했다고 지적한다. 급기야 신노동당은 계급 개념을 포기하고 새로운 용어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그들은 정권을 잡자마자 ‘사회적 배제 분과’(Social Exclusion Unit)를 발족시켰다. 토니 블레어의 최측근 고문인 매튜 테일러는 ‘계급’에서 ‘배제’로 향하는 움직임이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적 행위의 결과로 보는 대처리즘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계급은 나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배제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며 그러므로 나 스스로 행위자가 된다.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거대한 외부적 힘이 작용한 결과라기보다 그 사람의 행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처는 주저없이 이렇게 답했다. “토니 블레어와 신노동당이다. 우리는 적대자들의 생각조차 바꿔놓았다.”  

부서진 영국, 새로운 계급정치를 위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집요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부당하게 세금을 축내는 복지병 환자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엉터리 복지금 수령으로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10억 파운드로 추정되는데 탈세로 나가는 1년 예산은 700억 파운드에 이른다. 탈세가 복지 사기보다 70배나 많다. 그럼에도 언론의 왜곡 보도를 통해 세금 회피는 과소평가되고 복지 사기는 과대평가됐다. 

저자는 오랜 기간 단골 공격 대상이었던 ‘장애수당’ 문제 역시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기자들과 정치인들은 정상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수십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장애수당을 부정하게 수령한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전문가 크리스티나 비티 박사와 스티브 포서길 교수의 연구 결과는 다르다. 영국의 높은 장애수당 청구자 수는 바로 일자리의 문제며, 건강 문제라는 것이다. 일터에서 쫓겨난 광부들은 과거 종사했던 일 때문에 실제로 건강상 문제를 갖고 있었고, 그들은 실업급여보다 액수가 많은 장애수당을 청구했다. 오늘날 장애수당을 청구하는 이들은 비숙련 육체노동자로,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고 형편없는 보수를 받고 일한다. 잉여노동력이 넘쳐나는 지역에서 고용주들이 건강하지 않은 직원을 고용할 요인이 부족해 이들에게 구직의 기회는 훨씬 적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 제조업 종사자들은 매우 숙련된 사람들이었으며, 높은 보수를 받았다. 그들은 자기 일에 진정한 자긍심을 가졌다. ⓒ flickr

차브와 관련된 이미지 가운데 일부는 현실적 근거가 있다. 노동계급 10대 소녀는 중간계급에서 자란 동년배보다 아이를 낳는 비율이 높으며, 범죄와 마약 중독은 노동계급 거주지역에서 더 흔하게 발생하며, 좌절과 분노를 반사회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하지만 빈곤과 실업, 주거 위기가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토양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숙련된 안정적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불안정한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로 내몰렸다. 저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지역을 지탱해온 기둥들이 잇따라 무너졌는데, 삶이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됐다면, 그게 훨씬 놀랄 일이 아니겠는가?”

▲ 오언 존스의 <차브> 표지. ⓒ 북인더갭

저자는 좌파에 뿌리를 둔 단 하나 운동만이 현 난국에 대처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노동계급의 열망을 전반적으로 재정의하고, 증가하는 시간제 임시직 노동자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미래는 새로운 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특별한 초점을 맞춘 신조합주의에 달려있다. 탈정치화한 실업 문제를 의제화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 또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나아가 새로운 계급정치는 영국에만 국한돼서는 안 되고 세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미덕은 지난 30년간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에 자리를 내준 계급정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좌파들에게 계급운동은 더 이상 변화의 그럴듯한 매개물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대신 여성과 게이, 인종적 소수자의 해방을 위해 나섰다. <영국 노동계급의 지적인 삶>을 쓴 조너선 로즈는 온라인 학술자료에서 ‘여성’이란 키워드로 검색된 자료가 1만3820건, ‘젠더’가 4539건, ‘인종’이 1862건인 반면 ‘노동계급’이 키워드인 자료는 136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여전히 실존하며, 그들의 처지는 개선이 필요할 만큼 열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자 정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전면적인 사회개혁 조처들이 도입됐듯이,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낙관적 기대를 걸어보자. “비록 비웃음을 사고 무시당할지라도 그들은 다시 한 번 그 일을 할 것이다.”

▲ 오언 존스. ⓒ anticapitalistsorgTV 인터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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