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클라이브 톰슨 '생각은 죽지 않는다'

나는 ‘노모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에 찍힌 시간을 확인하고, 저녁에 잠이 들기 직전까지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친구와 얘기를 하거나, 뭔가를 읽는다. 드라마, 영화 등 웬만한 영상은 모두 폰으로 찾거나 다운받아서 보고,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는 일 외에는 대부분의 은행업무도 휴대폰으로 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쇼핑몰 앱을 이용해 구매하고, 각 언론사 앱을 이용해 신문기사를 읽고 방송뉴스를 본다. 페이스북․트위터․밴드 등의 SNS에 바로 기사를 공유하거나 스크랩하기도 한다. 눈으로 컴퓨터 화면의 영상을 보면서 귀로 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손으로는 궁금한 것들을 폰으로 바로바로 검색한다.

스마트폰, 컴퓨터,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가 현대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등장한 말이 ‘디지털 치매’다. 전화번호부, 다이어리, 수첩 등의 기능이 모두 손바닥만 한 기기 하나에 통합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자잘한 일상의 기억들을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디지털 치매’는 모바일 없이는 아주 가까운 사람의 연락처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계산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 지난 4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4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은 전년 대비 2.4%포인트가 늘어 14.2%로 나타났다. ⓒ KBS 뉴스 화면 갈무리

2011년 출간된 니컬러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디지털 문화에 친숙한 젊은이들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날 현상을 우려한다. 인터넷이 우리가 생각하고 읽고 기억하는 방식을 점점 더 얕고 가볍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보다 앞서 2009년 영문학자 마크 바우어라인은 같은 제목의 책을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을 <가장 멍청한 세대>라 평가했다.

인터넷은 인간의 생각을 좀먹는가?

기술 과학 분야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클라이브 톰슨은 <생각은 죽지 않는다>에서 이런 시각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톰슨은 컴퓨터 스크롤을 쭉쭉 긁어내리거나 폰 액정을 휙휙 넘기면서 책 대신 짧은 텍스트를 읽는 세대가 어떤 일도 ‘진득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독서에는 높은 수준의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그는 우리의 사고 패턴을 바꾸는 기술의 등장에 인간이 잘 적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 저자는 인터넷이 생각을 좀먹는다고 염려하는 이들에게 "기술은 인간을 더 똑똑하고 창의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 알키

톰슨은 인쇄술에서 전신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술적 혁신이 일어난 당대에는 우려가 넘쳤지만 우리가 훌륭히 적응했고, 새로운 툴의 사용법도 터득해 오히려 옛것의 장점까지 되살려낸 사실을 강조하며 변화를 낙관한다. 16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주조 활자를 개발한 뒤 사람들은 인쇄된 종이의 홍수에 시달렸다. 정보는 폭발하듯 범람했다. 수학자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책의 범람으로 사회는 “철저한 망각의 위험”에 빠지고 “야만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빗나갔고, 학자들은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을 오려내 발췌록을 만들었고, 독자들은 집약된 지혜를 접할 수 있었다. 현대로 치면 ‘블로깅(blogging)’을 한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사고 툴을 만나면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하고 창작해가며 새로운 툴에 적응해 나간다.

‘생각의 공개’가 만들어내는 청중효과

톰슨이 오늘날 디지털 기술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변화는 ‘생각의 공개(public thinking)’다. 이 프로세스를 잘 활용하면 대화와 토론의 옛 전통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되살리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에 글을 써본 적이 있는가? 짧은 글이라도 우리는 그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사실을 안다. 청중을 의식하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근거가 약한 허술한 주장, 진부한 표현, 판에 박힌 빤한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청중 효과’가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소통을 위해서 더 긴밀한 맥락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이 배우게 된다. 400년 전 프랜시스 베이컨 경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독서는 여유로운 사람을 만들고,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만들며, 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인터넷의 기능인 생각의 공개는 결과보다는 생각이 모아지는 과정에 가치를 둔다, 신문이 기사를 게재하면, 친구가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고, 블로거가 포스트를 올린다. 실질적인 지적 활동은 대부분 댓글에서 일어난다. 타인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고, 때론 반박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톰슨은 집단적 사고의 잠재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 전망한다. 새로운 표현을 위한 툴, 서로 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은 우리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나갈 잠재적 광장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온라인 세상에는 익명성에 기대 타락한 대화가 넘쳐나고 가십이나 시답잖은 이야기로 도배되거나, <일베>류의 적의가 난무하는 커뮤니티가 등장하는 등 ‘공론장’의 순기능을 전망하기엔 혼란한 그늘도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부작용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넷상의 대화를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터믈링(tummeling)’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터믈링’은 파티에서 사람들이 딴청을 부리지 않게 주의를 집중시키거나 결혼식에서 일어나 춤추도록 유도하는 사람인 터믈러(tummler)에서 따온 말이다. 훌륭한 터믈러는 조용한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하고 거친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고도의 기능을 발휘하는 토론 포럼에는 반드시 터믈링하는 사람이 있으며, 유튜브나 대형포털사이트의 댓글이 지저분한 데는 터믈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톰슨이 주목하는 것은 ‘디지털 문명을 이용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믿음’이다. SNS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증대시키고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낙관하진 않지만, 인간은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하고 기술과의 윈-윈(Win-win)을 만들어 낼 것이라 믿는다. “검색할 때마다 뇌가 단순해지고 멍청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는 분명히 대답한다. “웹과 위키피디아와 쉽게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은 창의적인 인간 정신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킨다.”

▲ 저자는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디지털과 집단 지성이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룬 사례로 평가한다. ⓒ 위키피디아 화면 갈무리

생각은 디지털을 타고 자란다

<가장 멍청한 세대>의 저자 마크 바우어라인은 디지털이 시대를 잠식하며 나타난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권한다. “책은 젊은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롤 모델을 찾게 하고 자신의 격동적인 감정을 관찰해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문제는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시라도 책에 온전히 집중하기에는 줄거리와 인상 깊은 구절, 감상평들을 줄줄이 읊어주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너무 가까이 있다.

2013년에 출간된 뇌과학 전문가 조나 레러의 <이매진>에는 하버드 학부생 86명을 대상으로 한 감각 실험이 나온다. 윙윙거리는 에어컨 소리나 가까운 칸막이 너머로 들리는 대화 등 외부자극 속에서 진행한 일종의 ‘집중력 테스트’였다. 이 실험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집중력이 떨어져 외부자극을 무시하는 데 더 애를 먹었던 학부생들이 ‘뛰어난 창의적 성취자’로 평가될 가능성이 집중력이 뛰어난 학생보다 일곱배나 더 높았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의식 속에서 사고를 더 풍부하게 혼합하도록 보장한다고 한다. 세계를 걸러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종국에는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대신 모든 종류의 말도 안 되는 유사물들을 고려하다보니 그 가운데 일부가 쓸 만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쉽게 산만해지고 부산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이들이 되레 창의적일 수 있는 것이다. 틈만 나면 핸드폰을 열어 뭔가를 검색하고, 책을 읽다 말고 느닷없이 인터넷 창을 켜 생각나는 영상을 찾아보는 ‘산만의 극치’가 21세기형 창조적 인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생각은 결코 죽지 않는다. 디지털을 타고, 더 자라날 수 있다.

인간, 컴퓨터 누가 더 똑똑한가?

컴퓨터가 나오기 전인 1970년대에는 체스의 최고수인 그랜드마스터가 되는 데는 적합한 지도자를 찾거나, 도서관에서 세계 최고의 게임을 꼼꼼하게 복기해놓은 문서를 일일이 찾아내 공부해야 했다. 1980년대 초 컴퓨터와 함께 등장한 시디롬에는 수십만 개의 체스 게임이 담겼고, 소프트웨어는 모의 상대가 어떤 수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분석해줬다. 젊은 플레이어들은 컴퓨터를 통해 게임에 필요한 직관을 길렀다. 컴퓨터가 체스판에 끼어들기 전에는 10대 그랜드마스터는 극히 드물었지만 컴퓨터의 출현 이후로는 몇 년 사이 최연소 그랜드마스터의 기록이 20번이나 갱신됐다.

우리는 더 똑똑해질 수 있다. 저자는 디지털 툴을 만난 인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伴人伴馬)인 켄타우로스라고 말했다. ‘인간과 컴퓨터 중 누가 더 똑똑한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답은 어느 쪽도 아니다. 가장 똑똑한 쪽은 둘이 함께 손잡은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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