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 ① 전쟁정치

“여러분에게 익숙한 제천의 현대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F.A.맥킨지의 <조선의 비극>(Tragedy of Korea)>에서는 제천에 대해 묘사하면서 ‘의병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아마 오늘 주제인 전쟁정치가 한국정치에 준 영향과 연관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전쟁정치>의 저자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있는 제천의 지역사를 언급하며 사회교양특강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정전과 분단이라는 준(準) 전쟁상태에서 내부의 반대세력을 적으로 취급해 폭력과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를 정당화해왔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군사평론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발언을 뒤집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발언을 인용한 김 교수는 “오히려 정치가 전쟁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군사력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항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에서 만들어진 힘의 역학관계는 승리한 쪽이 상대편을 완전히 제압하거나, 적절히 타협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승자와 패자의 권력관계나 힘의 관계가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남아있는 사회에 정치적 영역으로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현대사회의 정치는 전쟁의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 <전쟁정치>의 저자 김동춘 교수는 현대사회의 정치가 전쟁의 결과라고 말한다. ⓒ 배상철

4개의 전쟁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오늘의 대한민국은 4개의 전쟁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태평양 전쟁(1941~1945), 그리고 한국 전쟁(1950~1953)이죠.”

청일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청나라와 일본이 벌였다고 여기지만, 이 전쟁의 실체는 우리나라를 무대로 한 동학농민군 진압 전쟁이다. 이전까지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조선이 일본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게 된 계기였다. 러일전쟁도 전쟁이 벌어진 지역은 한반도 주변 해안지역과 중국 만주지방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 대한 패권을 확보했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됐는데 결국 연합군이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지만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게 됐다. 태평양전쟁이 남북분단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남북한이 분단됐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분단에 확실한 선을 그었다. 이 4개의 전쟁이 지금까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했다.

“현대사는 전쟁으로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각국의 국내정치에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그 국내정치에 의해 사회의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죠.”

김 교수는 전쟁을 제외하고 현대사회를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전쟁은 고대에서부터 권력관계의 모든 것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것은 군사적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가 크다. 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관계와 정치경제체제가 그 이후의 체제도 좌우하는 이유다.

▲ 김동춘 교수의 저서 <전쟁정치>는 전쟁이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 네이버 책

“제가 ‘전쟁정치’라는 개념을 사용한 이유도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한국전쟁만큼 중요한 배경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를 이해하는 데 과거의 한국전쟁뿐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휴전 상태가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은 과거의 일이면서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닙니다. 전쟁은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평소에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가끔씩 툭툭 튀어나오곤 하죠.”

‘적과 나의 구분’을 부추기는 국가보안법

“적과 나의 구분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모든 정치에서, 특히 전시체제 하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전쟁정치’가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적에게 내통하면 적과 같이 취급되고, 적에게 내통하지 않더라도 정부를 비판하면 적에게 내통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정부를 비판하지 않더라도 비판할 가능성이 많을 경우 잠재적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전쟁은 계속된다는 논리 속에서 한국 사회가 움직여지고 있으며, ‘전쟁정치’는 법, 정치권력, 담론, 정당, 사회운동, 시민조직 등 모든 정치•사회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에는 전쟁정치 이론이 깔려 있다. 국가보안법 제1조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법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한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좌익인사와 노동운동가, 통일운동가, 방북 인사를 공격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한국정책연구소 크리스틴 안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국가보안법이 진보 좌파 공격에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전쟁정치'는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와 사회 영역에 퍼져있다고 말하는 김동춘 교수. ⓒ 배상철

‘사상증명’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정치

김 교수는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위정자들도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졌다”면서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 바뀌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한국의 정치와 정당구조에도 전쟁정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세훈(전 국정원장)이 선거 개입 재판을 받을 때 그는 문재인(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을 빨갱이라고 했어요. 원세훈이 문재인을 정말 좌익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일까요?”

그는 “상식적으로 문재인이 좌익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했던 말, 지나온 행적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안”이라며 “문재인이 당선되면 좌익들이 설치고, 좌익들이 설치면 나라가 넘어간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기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적으로 몰아붙이고 그 적에게는 테러나, 폭력을 가할 수 있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다는 논리로 확장된다. 현실정치가 전쟁처럼 움직이고 자신의 반대세력을 적으로 모는 진영논리에 갇힌 한국정치는 그 자체가 ‘전쟁정치’라는 것이다. 

정치에서는 어떤 특정 세력이나 적으로 분류된 세력이 고립되면 나머지 세력들은 그 세력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일종의 ‘사상증명’을 해야 한다. 과거 독일 나치스가 펼쳤던 정치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전체의 권력지형이 낙인을 찍는 세력에게 유리하게 되고 나머지 세력까지 복종시킬 수 있다. 전쟁정치의 위험성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등 합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 사람을 죽이거나 배제했을 때 온다는 것이다. 

▲ 김동춘 교수는 전쟁정치가 반대입장을 듣지 않고 배제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해산이 전쟁정치인 이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것도 마찬가지예요. 의석 수 다섯 개인 통진당이 한국 사회를 흔들 정도로 위험한 세력이라고 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1956년 독일에서도 서독 공산당이 해산되는 사례가 있었다. 김 교수는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당시 해산결정을 내린 독일의 대법관을 만나러 간 적이 있으나, 그는 ‘그것은 50년이다’라고 말했다”며 “21세기에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국회의원과 그들로 이뤄진 정당을 이념적인 이유로 해산시키는 것은 난센스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통진당을 침으로써 비슷한 세력, 즉 평등주의 담론이나 복지 담론을 이야기하는 세력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거죠.”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정책을 보면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든지 정책 노선에 동조하거나 지지한다는 내용이 없는데도 일부 당원의 행적을 이유로 정당을 해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자체가 ‘전쟁정치’라는 것이다. 

지역정치에 배어 있는 전쟁의 논리

“정치학에선 ‘모든 정치는 지역정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례대표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국회에 보내는 사람들은 지역에서 뽑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으로까지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부수립과 한국전쟁 이후 정부의 어용세력으로 통일됐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힘 있게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 세력의 힘이 약한 것, 서민•대중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화하지 못하는 것 등이 있다. 김 교수는 그 이유의 배경에도 전쟁의 논리가 배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생적 시민사회 조직이라 불리는 조직이 형성되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까지 한국 정치는 좌우익 관계없이 지역사회에서 신망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제거됐다”고 설명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당시 서울 동대문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이승만을 막기 위해 독립운동가이자 대표 우익이었던 최능진이 입후보하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경찰은 200명의 추천인 명부를 모두 조사했고, 27명이 본인 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능진의 입후보 등록을 취소했다. 결국 최능진은 출마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이승만은 반혁명사건을 조작해 최능진을 감옥에 보냈다. 

반(半)국가에 사는 우리 국민의 주권은 ‘4분의 1주권’

"경찰이 세월호 집회에 차벽을 설치하는 게 합법일까요? 불법일까요? 과거 쌍용차 공장 지붕에서 특수경찰들이 노동자들을 진압했습니다. 저렇게 (폭력적으로)진압해야 했을까요? 얼마 전 세월호 광화문 집회 현장을 진압할 때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제주도 강정마을, 용산참사 등 진압 모습도 흡사 전쟁과 비슷합니다."

국가의 첨병은 경찰이다. 경찰은 대민관계에서 현장에 있고, 민간인들과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우리나라 경찰이 매일 불법을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음주단속조차 법적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은 행정부에 속하지만 때론 시민들에게 사법권까지 행사한다. 예를 들어 경찰의 즉결심판권 행사가 그렇다. 

우리 사회가 경찰의 월권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배경에는 시민들의 복종적인 심성이 존재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전쟁 이후 세대는 한국이 북한과 별개의 국가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휴전은 개인의 삶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준 전쟁체제이며, 불안한 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안보 문제만큼은 국가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휴전이란 특수한 상황의 연장선에서 한국 시민들이 갖고 있는 주권은 ‘4분의 1주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한국은 국가성이 완성되지 않은 ‘반(半)국가’라고 표현했다. 반국가에서 국민이 갖고 있는 주권은 절반의 절반인 4분의 1주권이라는 것이다. ‘절반주권’이란 말은 1960년 샤츠 슈나이더가 <절반의 인민주권>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 국민들이 선거제도나 사실상 양당제인 정당제도로 인해 한 나라의 완전한 주권이 아닌 절반(半) 주권을 누린다고 설명한 데서 비롯됐다. 

전쟁정치는 갈등‧대립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돌릴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이념 논쟁에서 매번 ‘빨갱이’시비가 붙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의 반공주의는 ‘한국식 인종주의’라고 표현했다. 주권 밖의 존재에게 잘못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로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노동자가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다. 

김 교수가 설명하는 전쟁정치의 메커니즘은 자신과 입장이 다른 정치적 반대 세력을 무조건 적으로 돌린다는 데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상반된 세력 간에는 전쟁의 논리가 통한다. 보복당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전쟁에서 학살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중립은 없다. 경찰이 노동자와 세월호 유족들을 왜 그렇게 폭력적으로 과잉진압했는지 의문이 풀리는 지점이다. 

시민조직 확장을 막는 전쟁정치

“지금까지 한국의 사회운동은 압도적으로 교수들이 많이 했습니다. 교수들이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도 안 잘리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기 때문이죠.”

일반 시민사회에서도 전쟁정치는 여지없이 적용된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돈”이라며 “경제적 후원이 없으면 시민운동은 굴러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은 시민단체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시민들이 스스로 자기들 힘을 키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적과 나를 구분하는 논리는 이런 통제들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내야 자기주도의 정치가 유지되는 것이다.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 첫머리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는 “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법의 공백 상태”를 가리킨다. 김 교수는 칼 슈미트와 아감벤이 얘기했던 ‘예외 상태’가 한국처럼 잘 적용되는 나라가 없다고 했다. 한국의 사례와 전쟁의 개념을 가지고 현대사회, 현대자본주의, 현대국가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회 문제는 평화의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평화이론가 요한 갈퉁은 ‘세계평화 없이 한 나라의 민주화는 없다’고 했죠. 그래서 전쟁은 저 멀리 떨어진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우리 정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조준상 박인수 홍기빈 김동춘 구갑우 전중환 박상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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