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조준상 KBS 이사
주제 ① 한국 공영방송에 거는 기대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영방송이 과연 필요할까요?”

조준상 KBS 이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KBS 조직이 재도약을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이 질문만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부실 보도로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었고, 조 이사와 김주언·최영묵·이규환 등 KBS 이사 넷은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는 저널리즘의 추락과 껍데기뿐인 ‘지상파’라는 온실에 안주해온 행태 때문에 공영방송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 필요성에 대한 의문

조 이사는 KBS의 <개그콘서트>나 드라마 같은 연예오락 장르가 시청자의 문화적 요구를 만족시키지만, 이는 지상파 방송간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공영방송이 없어도 지상파와 케이블 등 대체재가 존재해 시청자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상파를 통해서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시청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2년 기준 직접수신율은 7.9%밖에 안 된다. 대부분 유료방송이나 VOD를 통해 유료로 볼 수밖에 없어 ‘국제 스포츠 행사에 대한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을 공영방송을 통해 확보한다’는 주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류를 앞장서 추동하고 부추기는 기능은 K-TV나 아리랑TV 같은 국영방송에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해외 거주 700만 한인들을 위한 방송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는 국영방송에서 해야 할 것들을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인 것처럼 포장하여 수신료 인상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KBS의 지배구조와 제작 자율성을 둘러싼 내부 장치가 그대로인 점도 그가 지적한 주요 문제다.

▲ KBS 조준상 이사가 '한국 공영방송에 거는 기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박고은

“유일하게 바뀐 건 KBS 사장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굴신형의 인물이 다시 사장으로 임명될 경우 퇴행이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공영방송을 향한 KBS의 시도와 한계

조 이사는 그런데도 KBS가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3월2일 ‘가장 신뢰받는 창조적 미디어’를 미션으로, ‘TV를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다’를 비전으로, ‘우리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를 핵심가치로 시청자들에게 공표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미션과 비전을 기초로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발표했고, 인력구조 개편과 퇴출구조 확대, 임금피크제와 성과 중심 연봉제 도입 등을 통해 앞으로 5년간 3천억원의 인건비와 다른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발표는 저널리즘과 보도여론이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기본축이라는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조 이사는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도입, 조직과 비용 구조 혁신에 대한 한계도 지적했다. ‘담당국장 중간평가제’나 ‘임명 동의제’처럼 제작 자율성을 내부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방안이 없다는 게 그 중 하나다. 그는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핵심에는 ‘사회적인 이슈, 특히 집권세력과 관련된 민감한 이슈를 침묵∙외면∙축소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과 비용 구조를 혁신하겠다는 방안에서도 한민족방송(사회교육방송)처럼 공영방송이 수행할 필요가 없는 업무를 과감하게 구조조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 업무에 드는 인건비만 해도 200억원이 넘고, 수신료와 광고수입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재원이 전제조건이나 인과관계적 구조로 논의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공영방송의 개념적 본질에는 공공성, 정치·경제적 독립성 등이 내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재원구조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확립하기 위해 재원구조가 변해야 한다거나, 재원구조를 바꾸기 위해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더 확립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국내 정치의 논리 속에 탄생한 것으로서 해외 공영방송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입증하려면

“영국은 25만원의 연간 수신료를 내고 30개 넘는 지상파 채널을 시청할 수 있죠. 프랑스 역시 18만원의 수신료로 별도 비용 없이 20여개 지상파 채널을 무료로 시청합니다.”

반면 한국의 시청자들은 어떨까? 연간 3만원의 수신료를 내고 KBS 2개 채널을 포함해 지상파 5개 채널 정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채널들을 시청하기 위해 연간 12~18만 원을 주고 유료방송에 가입해야 하는 시청자들도 유료방송 가입가구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조 이사는 이런 측면에서 수신료가 2500원에서 35년째 동결돼 있다는 점만이 강조되어서는 곤란하며, 실질적으로 지상파 채널들을 보기 위해 부담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세 가지 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국영방송으로 넘겨줄 부분을 선택한 뒤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제작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내부 제도를 마련하며, 다채널 서비스를 도입하고 유료방송에 의무송신을 하자는 것이다. 조 이사는 필요성 입증을 위한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보인 이후에야 시청자들에게 수신료 인상을 요청하는 것이 타당한 순서라고 말했다.

조 이사는 크게 세 가지 기준으로 공영방송을 정의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공영방송은 소유구조, 운영주체와 목적, 그리고 재원 조달방식 등을 통해 규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유구조 면에서 공영방송은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나 공법상 영조물 법인이 소유하는 형태를 띤다. 영조물 법인이란 공적 성격을 갖는 법인으로 공공단체의 하위개념이다. 이외에 국영방송은 국가가 그 방송사의 소유주체가 되는 방송이며, 민영방송은 그 소유구조가 법적으로 민간의 사유에 해당하는 방송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운영 주체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공영방송은 국가나 개인이 아닌 국민이 주체가 되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는 방송이다. 조 이사는 “공영방송이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양하고 객관적이며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책무가 도출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재원 조달 면에서 공영방송은 운영 재원의 대부분을 공적으로 조달하는 특징이 있다. 방송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으로는 유료가입비, 광고료, 수신료, 조세 등이 있는데, 공영방송은 이중 수신료나 조세와 같은 공적 재원조달이 중심이 돼야 한다.

▲ 조준상 이사의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박고은

호주 ABC는 수신료 없이도 공영성 살렸다

그렇다면 3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시켜야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을까? 조 이사는 “이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며 “세 기준으로 보면 호주 ABC는 공영방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호주 ABC는 공사 형태이기는 하나 운영 재원 거의 전액을 정부로부터 직접 지원받고 있다. ABC는 수신료를 받지 않고 광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난해 10월 호주 ABC에 출장을 갔을 때 마크 스콧 사장과 이사들, 그리고 집행 간부들은 ‘공영방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정부에서 재원을 조달받는 것과 무관하게 정부의 간섭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난해 초 토니 애벗 정부의 강경 난민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보도를 낸 뒤 ABC는 정부로부터 예산 삭감 압박을 받아왔다. 그해 11월 말콤 턴불 통신부장관은 ABC에 지원하는 예산을 5년간 2억4500만 호주달러(약 2300억원)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ABC는 몇몇 해외지국을 폐쇄하고 500명 안팎의 인력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위기에 놓였지만 시사 프로그램을 축소하지 않았다. 조 이사는 “ABC의 사례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공영방송을 정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 이사는 “한국의 실정은 ABC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며 “한국은 알아서 시사 프로그램을 축소 또는 폐지했다”고 지적했다. KBS는 2008년 이후 주중 매일 내보내던 시사 프로그램인 <생방송 시사투나잇>을 <생방송 시사 360>으로 변경했다가 2009년 폐지했다. MBC 또한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하더니 지난해 11월 교양제작국을 폐지했다. <PD 수첩> <MBC 다큐스페셜> <인간 시대> 등 숱한 히트작을 남긴 역량있는 PD들은 교육명령을 받거나 신사업개발센터 등 비제작 부서로 발령이 났다.

조 이사는 공영방송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실한 것이 비단 제도 탓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BBC는 독립 규제기관인 트러스트 위원 12명을 모두 정부가 임명하고 여기서 사장을 선출하지만 정부와 언론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BBC는 2005년에 방영된 <이라크와 토니 그리고 진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제거가 전쟁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라 이라크의 정권을 인위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보도했다. 블레어 총리가 이미 알고도 참전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왔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블레어 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조 이사는 “결국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전통과 관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됐습니다.’ KBS의 프로그램들이 끝날 때 등장하는 자막이다. 그런데 KBS 뉴스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스포츠 중계 등에는 이런 자막을 삽입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신료가 쓰이는 곳은 일관성이 없다. 시청자들이 수신료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조 이사는 수신료 운용은 공통비용 배분의 문제인데 KBS가 수신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며 수신료 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 조 이사는 수신료 운용은 공통비용 배분의 문제인데 KBS가 수신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며 수신료 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 KBS

수신료를 어떻게 쓰겠다는 것부터 밝혀야

“현 수신료 인상안에는 운용에 대한 원칙이 전혀 없습니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시청자들에 대한 책무를 저버리고 있는 거죠.”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공청회가 열린 지난 1월 15일 조 이사를 포함한 4인 이사는 ‘수신료 관리운용 규정 제정안’을 제출했다. 내용은 현재 광고수입과 콘텐츠 판매수입 등 다른 재원과 통합운용되고 있는 수신료의 사용처를 정해 회계분리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조 이사는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 전에 수신료의 우선 사용처를 정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수신료로 제작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국내 시청자가 무료로 접근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지난 12월 MBC와 SBS가 주도하는 POOQ(푹)에 출자∙참여했다. 이에 따라 수신료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홈페이지에 무료로 풀 수 없게 됐다. 이는 수신료와 콘텐츠 유통의 원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비롯된 것이다. 조 이사는 KBS가 수신료 운용 원칙도 세우지 않은 채 수신료를 인상해 달라고 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일이라고 덧붙였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투자 또한 강화해야 합니다.”

 조 이사는 KBS의 역할로 지역적 기여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현재 지역마다 다르지만 KBS 지역 총국과 지국 대부분이 재정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KBS는 8개의 총국과 10개 지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10개 지국에는 제작비가 투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10개 지국에서는 총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중계하는 기능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다. 8개 총국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8개 총국의 제작비가 500억원도 안 되기 때문이다. 조 이사는 지역에서 걷히는 수신료 대부분이 지역 총국과 지국에 투자되어야 지역 KBS가 각 지역의 공익을 위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권세력 비판할 수 있어야 공영방송

“보통 공영방송이 공익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댈 때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하죠. 그런데 수신료라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은 공영방송도 많습니다.”

 조 이사는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신료로 운영되지 않는 공영방송이라도 그 존립 이유는 공공성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호주 ABC는 매년 국방부나 재무부 등과 예산 경쟁을 하면서도 권력 감시 기능을 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절대 축소하지 않는다. 예산삭감에도 위축되지 않고 정부 권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려 한다. 공영방송의 자율성은 제도만이 아니라 전통과 관습에 의해 보장되는 측면도 크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보수적 언론 지형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일까? 조 이사는 이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론장으로서 순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KBS가 지난 몇 년간 집권세력과 관련된 민감한 이슈에 침묵함으로써 공론장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정성 가이드라인에 ‘사회적인 이슈, 특히 집권세력과 관련된 민감한 이슈를 침묵∙외면∙축소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포함시켜, KBS 스스로가 공영방송의 역할과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요성 입증을 위한 노력을 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이후에야 수신료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요청하는 게 타당한 순서라는 논리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조준상 박인수 홍기빈 김동춘 구갑우 전중환 박상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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