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박인수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제 ① 헌법개정: 어떤 정부를 가질 것인가

“헌법은 의복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몸에 맞는 옷을 입듯이, 국가도 변화에 따라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박인수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은 옷’이라 말하며 ‘현재 헌법이 정한 정부 형태는 과연 우리에게 맞는 옷인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현재 우리 정부 형태는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대통령이 헌법을 초월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문자답했다.

“(대통령의) ‘권력 집중’으로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분산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우리가 어떤 정부 형태를 가지면 좋을지 검토해보려 합니다.”

▲ 박인수 교수는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헌법개정이 필요하며 이원정부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봉기

박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국정조정자, 국가원수와 행정부수반, 국회의 해임건의권 무력화, 국가 비상사태시 대통령 권한, 그리고 사면권 행사로 나누어 설명했다.

사법부의 국정조정자 역할을 대통령이 행사

박 교수는 대통령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입법권과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을 엄격히 분리한 삼권분립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엄격한 의미의 대통령제하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행정부는 법률의 집행에만, 입법부는 법률은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만약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사법부가 독립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로 국정조정자 역할을 하는 게 대통령제의 국정운영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사법부가 맡아야 할 국정조정자 지위를 대통령이 맡고 있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엄격한 의미의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국가원수로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서 균형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지, 국정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게 아닙니다.”

박 교수는 대통령이 국정조정자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건 우리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 소통하고, 행정부 장관은 국회의원 중에서 선출된다. 국민의 선거를 통해 형성되는 의회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 모두를 맡는 것이다. 그는 사실 대통령제하에서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국회에 공무원 연금개혁 시한을 주문하거나 민생법안을 우선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 입법발의권이 있다는 건 완전 의원내각제예요. 대통령제 국가에선 생각할 수 없는 겁니다. 또 다른 의원내각제적 요소는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할 때 제한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의 겸직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로써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대통령제의 삼권분립 원칙을 벗어나고 있다. 박 교수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원, 윤상현, 주호영 등 현역 여당의원을 청와대 정무특보로 임명한 것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로 규정한 국회의원의 겸직 가능한 업무 중 ‘청와대 정무특보’는 없기 때문이다.

“(현역 여당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한 게) 가능한 건 대통령이 국정조정자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 박 교수는 대통령이 현역 국회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할 수 있는 것은 국정조정자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SBS 뉴스 화면 갈무리

박 교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소통을 늘려 궁극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정무특보 임명의 ‘대의’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대의’라 할지라도 법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이번 정무특보 임명을 ‘제왕적 권한 행사’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소야대 정국이면 손발 묶이는 대통령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수반으로서 지위를 동시에 가진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회 등 정치권과 소통하고 원수로서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손발이 묶일 때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체계에서는 ‘여대야소(與大野小)’의 국정이 돼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선출된 여당의 의석수가 그 외 정당인 야당의 의석수보다 많아야 국정운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1988년 2월 25일부터 효력이 발생됐는데 이때 처음으로 구성된 게 13대 국회다. 13대 이래 19대까지 확실한 여대야소가 된 적이 없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조금 넘게 차지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이 꼼작할 수 없는 구조다.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려고 해도 국민의 권력 견제 심리로 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고, 과반수를 차지한 야당이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헌법의 전반적 구조로 살펴볼 때 여소야대에서 행정부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대다수 국정 운영에 관하여 국회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우리 헌법의 기본 원칙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 제 49조가 적시하고 있듯이,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보장된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 유리한 국정 상황을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 헌법은 행정부와 국회의 협조 관계가 이뤄져야 하는 체계다.

국민 뜻 거스른 정계개편, 정치 불신만 키워

대통령은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계개편이 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정계개편이 이루어졌지만 ‘DJP연합’이 기억에 남습니다. 1996년 정치성향이 달랐던 DJ(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JP(김종필•자유민주연합 총재)가 힘을 합쳐 대통령 후보로 김대중 총재를 내세워 당선되었고 이후 국정운영을 함께했죠. 이는 국민에게 정치적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개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개편도 많습니다. ‘국회의원 임대’가 그 예입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제3당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 부각됐습니다. 여당은 의석수가 적었기 때문에 무소속이나 다른 정당 소속 의원 6명을 빌려와 과반수를 만들었죠.”

1996년 ‘국회의원 임대’를 통해 정계를 개편하고 여대야소를 만들지만, 그 결과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이었다. 국민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정계개편은 국정운영 변화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국민의 정치적 불신과 무관심이 가속되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손해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정치에서 국민이 배제되면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 유아독존의 정치로 국민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국회의 해임건의권을 무력화하는 대통령의 꼼수

박 교수는 국회의 해임건의권도 애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헌법 제63조 1항에 따라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해임건의권은 행정부의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에 규정돼 있는데, 말 그대로 건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건의를 자문의견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국회에) 해임의결권이 있어서 국회에서 국무위원의 해임을 의결합니다. 수상이나 국가원수는 여기에 기속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임을 하게 돼 있습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의원내각제 국가의 국회는 일반적으로 해임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행정부 수반이 자의적으로 국무위원 임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 박 교수는 국회의 해임건의권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행정부 견제라는 본래의 역할을 온전히 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 김봉기

국회의 해임건의권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정치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건의를 무시하고 해당 국무위원을 중용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국회가 해임건의권을 행사하면 대통령은 이를 대부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국회의 해임건의권이 행정부 견제라는 본래 역할을 온전히 해낸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편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해임건의를 발의할 움직임을 보이면 해당 국무위원은 건의안이 가결될 경우 대통령이 안게 될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재빠르게 국무위원직을 사임한다. 해당 위원의 자진 사임으로 난관을 극복한 대통령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인사를 다시 정부 고위직에 임명하는데, 이때 주된 행선지는 청와대다. 결과적으로 해당 인사를 국정 수행에 부적합한 인사라고 판단한 국회의 의사가 무력화하는 셈이다.

“국회가 뭐 하는 곳입니까? 국회는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고 권한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국회의 의사와 유리되는 정부 고위직 임면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 권한은 결과적으로 무력화하는 겁니다. 이래선 국회가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대통령 입맛대로 행사되는 비상조치권

박 교수는 대통령이 제왕인 이유로 헌법 제76조 1항을 들었다. 76조는 대통령의 비상조치권을 말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박 교수는 76조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한 가지는 조항 안에 명시된 권한의 비대함이며, 다른 하나는 권한이 발효되기 위한 요건과 절차의 모호함이다. 그는 76조 1항의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이 독립명령이며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독립명령은 법률의 위임에 의거하지 않고 내려지는 명령으로 민주제에서 인정되지 않는 명령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명령이 법률의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대통령의 명령은 입법권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법률을 최고규범으로 삼는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이 우리 경제상의 아주 위급한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면 대통령이 명령을 통해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비상조치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과 절차도 애매하다. 박 교수는 76조의 요건이 “이현령비현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행사조건은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긴급한 조치의 필요’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독립적인 주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비상조치권 행사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묻습니다. 대통령, 국회, 사법부가 각각 헌법재판관 3명씩을 지명하기 때문에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몽테스키외 “사면권은 군주정의 특성이다”

▲ 몽테스키외는 사면을 군주정의 특성이라 평가하며 덕성을 원리로 하는 공화정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 문예출판사

박 교수는 대통령제의 요체를 사법부의 독립과 우월적 지위 확립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은 과거 군주가 맡던 국정운영의 최종 조정자 역할을 사법부에 부여했고, 이는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법부는 우월적 지위는커녕 때에 따라 사법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법원의 종국적 판결에 대해서도 관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면권 행사다. 대통령은 헌법 제79조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게 특별사면입니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특별사면권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언제든지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게 지나치게 잦고 광범위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는 결국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 되거나 경우에 따라서 사법권 침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사면은 군주정의 특성이라며, 덕성을 원리로 하는 공화정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앞으로 개헌을 하게 되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축소와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사법권을 훼손하지 않도록 대통령의 사면권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은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에 가까워

박 교수는 ‘어떤 정부 형태가 우리에게 바람직한가’라는 논의에서 종종 나오는 논리인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보다 대통령제가 우리에게 적합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이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에 가까운 국가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조선 시대의 당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사실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세력이 있다는 건 민주주의적 경험을 했다고 봐야 돼요. 군주가 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당쟁을 거치면서 신하들이 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박 교수는 우리의 역사적 배경과 제도적 습성은 의원내각제에 가깝다고 말했다. 군주가 세습된다는 점에서 조선은 군주제 국가가 맞지만, 국가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능률성 측면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아직 한국에서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원정부제가 국민통합형 정부

“대통령제의 능률성과 의원내각제의 민주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면 이원정부제입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우리 몸에 맞는’ 정부 형태는 이원정부제다. 이원정부제에서는 여대야소가 되면 대통령제와 같은 강력한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우리 대통령제가 여소야대에서 국정운영이 어려워지는 것과 달리 이원정부제에서는 의원내각제 측면이 나타나 비록 속도는 느려도 국정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소야대라는 국민적 의사를 반영해 국가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이원정부제가 ‘국민통합형 정부’라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조준상 박인수 홍기빈 김동춘 구갑우 전중환 박상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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