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음식’

▲ 견민정 기자

유럽 중세 철학자들은 맨 위 신에서 맨 아래 무생물까지 우주에는 수직적 서열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신과 무생물 사이에 여러 식물과 동물이 존재하기에 먹는 것에도 서열이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 서열은 사회적 서열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서민은 서열이 낮은 음식을 먹고 귀족은 서열이 높은 음식을 먹었다. 서열은 기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불, 대기(하늘), 물, 땅의 순서였다. 땅에서 나는 뿌리 식물은 가장 낮은 서열에 속하고 하늘과 가까운 가금류나 열매는 높은 서열에 속했다. 15세기 한 이야기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남자가 과수원의 복숭아를 훔쳐먹었다. 그것을 알게 된 귀족이 남자에게 말했다. “복숭아 같은 과일은 나에게 어울리는 음식이지 너에게 어울리는 음식이 아니다.” 그들은 음식 서열과 사회적 서열을 동등하게 여겼다.

오늘날, 음식에 서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음식에는 서열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상황은 곧 계급이다. 그 계급은 먹는 것을 결정한다. 가난한 아이들은 보통 가정 아이들보다 영양이 부족한 음식을 섭취한다. 비싼 과일이나 채소 대신 값싼 라면과 햄 등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음식을 주로 먹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동등한 식사를 할 유일한 기회는 학교 급식 시간뿐이다. 하지만 급식 먹기는 쉽지 않다. 친구들과 같은 식탁에 앉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 굶주림은 프랑스혁명의 한 원인이 되었다. ⓒ pixabay

역사 속 많은 봉기는 먹을 것과 관련하여 일어났다. 프랑스도 그렇다. 1850년대 정치가들은 빵 값이 오르면 폭동이 일어날까 늘 전전긍긍했다. 1848년 2월 혁명 때 있었던 밀가루 약탈 사건과 시장에서 일어난 폭동이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굶주림이 프랑스혁명의 한 원인이 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은  먹기 위해 투쟁했다. 그 결과, 프랑스 아이들은 균형 잡힌 양질의 식사를 하고 있다. 전채 요리, 본식, 후식으로 이루어진 점심을 매일 즐길 수 있다. 급식은 학교가 아닌 시청에서 담당하며 부모는 소득에 따라 급식비를 낸다. 아이들 식탁에 음식 서열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때가 되면 언제나 '정의사회 실현'을 외친다. 정의의 '의'(義)는 양과 창을 붙여 만든 회의문자로 원시공동체에서 먹을 것을 균등히 나눠 먹는 행위를 뜻한다. 애초부터 정의는 먹을 것에서 비롯됐다. UCLA는 인간의 뇌 속에서 음식물과 공정함에 대해 반응하는 부분이 같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니 먹는 것으로 차별하는 건 아주 심각한 차별이다. '정의사회 실현'을 외치는 정치인들은 먹을 것 하나 나눠 먹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들이 외쳐대는 정의 사회는 아직 멀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은 아직 중세에 머물러 있다.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 음식 서열을 만들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눈치를 본다. 아이들의 식탁에는 정의가 없다. 먹는 것으로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어른들이 복숭아는 네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귀족과 무엇이 다르랴.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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