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행복’

▲ 이수진 기자

두 가지 미래를 상상해보자. 4천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하반신이 마비되는 것. 둘 중 하나를 경험해야 한다면 대부분 전자를 고를 것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더 낫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미국 심리학자 댄 길버트는 이러한 사람들 예상이 틀렸다고 말한다. 그의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사건 발생 1년 후 두 그룹의 행복지수는 50점으로 같았다. 아무리 좋거나 나쁜 일도 발생 후 3개월이면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행복은 벌어지는 일이나 사건이 아니다.

지난해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고등학생 2,648명에게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돈’(19.2%)‘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주요 포털에서 2015년 새해 소망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도 ‘경제적 성취’였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 클레어몬트대 연구팀이 세계 400대 부자와 미국 중산층의 행복지수를 비교한 결과 격차가 크지 않았다. 경제적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다.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소득이 늘어도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꼽는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2015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143개국 중 118위다. 청소년 자살률은 10년째 OECD 1위다.

행복을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은 ‘자아(ego)’에 있는데 사람들은 행복을 ‘초자아(super-ego)’에서 찾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초자아는 사회적 요구로 형성된 인성을 의미한다. 복권에 당첨돼 막대한 부를 얻거나 연봉이 높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사회적 요구와 이상을 채우고도 행복해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기업 CEO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그렇다. 사회적 욕구를 채워서 일시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어도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없다.

▲ 행복은 벌어지는 일이나 사건이 아니다. 내가 나임을 잊어버릴 정도로 어떤 일에 몰입할 때 행복해지는 순간이 온다. ⓒ stocksnap

칙센트미하이는 전 세계 8천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행복한 사람들은 몰입 상태에 빠져있다는 공통점을 찾았다. 몰입은 어떤 일에 집중해 내가 나임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몰입을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와 적절한 수준의 난이도, 즉각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그는 집보다 직장이 몰입에 이르기 쉬운 장소라고 말한다. 특히 일의 난이도가 능력이나 역량에 제대로 부합할 때 몰입하기 쉽다. 너무 쉬우면 지루하다고 느끼고, 너무 어려우면 불안해져 일 처리 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회사의 부속품처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포정은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궁중에서 소 잡는 일을 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마치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 같았다. 문혜군이 감탄하며 어떻게 그런 경지에 올랐는지 묻자 포정이 답했다. "제가 따르는 것은 기술이 아닌 도(道)입니다. 처음 소를 잡을 때 소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삼 년이 지나자 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정신으로 소를 대하며 하늘이 낸 결을 따라 결 사이에 칼을 대고 있습니다." 몰입의 경지에 이른 포정은 사회적으로 천한 백정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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