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거짓말’

▲ 이청초 기자

이솝우화 속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쟁이다. 그는 거짓말을 일삼다가 마을 주민에게 신뢰를 잃어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양을 지키지 못했다. 전혀 다른 느낌의 양치기 소년도 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은 주인집 딸을 연모하는 풋풋한 청년으로 묘사된다. 같은 양치기 소년이지만 이렇게 달리 그려지는 건 단순히 등장인물이 지닌 성격차이 때문일까?

이목(移牧)은 계절마다 양이나 소떼를 몰고 산기슭을 오르내리며 키우는 목축방식을 일컫는다. 봄에는 산 중턱에 양을 풀어 놓고 풀을 뜯어먹게 하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곳을 찾아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가을이 되면 다시 산중턱으로 양을 데리고 내려와야 한다. 양치기는 이런 과정을 거듭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는 마을과 동떨어진 채 말벗 하나 없이 적적한 생활을 한다. 양치기는 외로움과 싸우는 직업이다.

양치기의 외로움은 이솝우화와 소설 <별>에도 드러난다. <별>의 양치기 소년은 보름마다 한 번씩 양식을 가져다 주는 농장식구들에게 마을소식, 특히 주인집 딸 이야기 듣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살았다. 마을 소식은 무료한 일상에 내리는 단비였을 것이다. 반면,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외로움을 달래는 법으로 거짓말을 택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 한마디는 사람들 관심을 단번에 불러오니 외로움에 이만큼 좋은 처방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소년에게 마을주민은 외로움을 달래주기는커녕 소년을 타박하거나 자신들의 양이 무사한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양치기 소년이 정작 바랐던 건 자신에 대한 관심이었을 텐데도.

▲ 인간은 누구나 따뜻한 관심과 인정을 필요로 한다.  ⓒ Senset Girl (사진제공: Unplash)

우리 주변에도 양치기 소년들이 있다. 외로움을 사랑이나 거짓말로 드러낸 이야기 속 양치기 소년들처럼 이들도 외로움을 다양한 형태로 표출한다. 세상과 담을 쌓는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선택하거나 외로움을 분노로 풀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다. 외로움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마을 주민’일까? 마을 소식을 한 보따리 들고 오는 주민인지, 자신의 이익만 따지고 드는 주민인지 우리 스스로 뒤돌아봐야 한다. 과격한 형태로 드러나는 외로움을 무조건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내면을 보듬는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가 점점 가늘어지는 이를 돕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히키코모리와 은둔형 외톨이를 분석한 <유유자적 피플>의 저자 이충한씨는 그 해법으로 즐거움, 관계, 노동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 교수는 ‘영혼의 3대 영양소’로 자유, 유능감, 관계를 꼽았고,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삶의 위대한 세 영역’으로 사랑, 일, 놀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법이 제각각인 듯하지만, 이들 세 요건은 그 어느 것도 개인 혼자 충족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인, 즉 사회적 호응과 교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따뜻한 관심과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 시대의 양치기 소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관심과 애정에 달렸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