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도시’

▲ 유수빈 기자

높은 건물 신축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사가 끝나면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 옆 야트막한 건물은 허물 채비를 하고 있다. 매캐한 시멘트 냄새와 귀를 찌르는 드릴 소리가 어딜 가든 따라붙는다. 걷다 보면 블록마다 한두 개 건물에는 반드시 공사용 가림막이 쳐져 있다. 2012년 어느 날 삼청동과 홍대앞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4년, 비슷한 현장이 ‘경리단 길’과 ‘서촌’에 재현됐다. 올해도 지역은 다르지만 반복해서 일어나는 똑같은 현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는 산업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를 강요당하는 유기체다. 끊임없이 팽창하고 발전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니 쉬지 않고 변화하는 게 도시의 본모습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 서울의 북촌과 삼청동에서 일어난 도시의 변화에 많은 이들이 씁쓸해하고 있다. 정겨운 한옥들에 이끌려 들어온 예술가들을 몰아내고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특별하던 공간을 여느 곳과 다름없는 도시풍경으로 만들어버렸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변한 공간은 그 공간만의 정서를 집어삼키고, 그 안의 사람들을 내쫓고, 원래 주인들에게 망각을 강요한다. 대신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변해간다. 가로수길만 봐도 그렇다. 가로수길은 더 이상 돈이 없는 예술가들의 작은 공방들을 거닐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가로수길을 뒤엎은 SPA 브랜드 매장과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가로수길만의 정서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린다기보다 그들의 주머니 속 지갑이 열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자본에 의해 획일화한 도시 풍경은 소비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면 배제당하는 현실을 담고 있다. 소비하지 않으면, 더 나아가 소비할 수 없으면 누릴 수 있는 공간의 크기 또한 줄어든다. 이 원리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은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다. 커피 한 잔의 값이 공간을 누리는 대가인 셈이다. 코엑스몰, 대형서점, 백화점과 같은 공간 또한 자신이 소비하는 것에 따라 규정되는 공간이다. 도시는 두둑한 지갑을 지닌 사람들만을 위한 풍경으로 채워진다. 이렇듯 자본이 이끄는 대로 자라나는 도시를 우리는 그저 바라보아야만 할까?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도하는 도시는 종말을 고한 걸까?

지난여름, 유럽을 여행하며 스페인 세비야의 오래된 구역인 엔카르나시온 광장의 버섯 모양 전망대 ‘메트로폴 파라솔(Matropol Parasol)’에 올랐다. ‘엔카르나시온의 버섯’으로 불리는 그곳에 오르면 누구나 세비야 대성당부터 저 멀리 에스파냐 광장까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풍경을 바라보고 공간을 즐기는 데도 공평하고 민주적이다. 

▲ 메트로폴 파라솔에서 본 세비야의 저녁 풍경. 노을과 도시 풍경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프랜차이즈 화장품과 옷가게가 즐비한 한국의 유명 거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 유수빈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전망대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 한 잔이었다. 1유로라는 그리 비싸지 않은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 한 잔은 전망대에 오르는 그 '누구나' '느긋이' 앉아 붉게 물드는 세비야의 저녁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라운지 바에서 뭔가를 또 사지 않으면, 그저 한 바퀴 휘 돌아보고 빠르게 나가야 하는 여느 전망대와 다르다. 버섯 전망대에 어울리는, 버섯을 본떠 만든 스툴에 앉아 음료를 한잔 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세비야의 하늘이 도시의 지붕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느낄 수 있다. 

도시는 개발하더라도 보존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지하에는 전망대가 세워진 곳에서 발견된 로마와 무어인들의 고대유적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1층에는 원래 시장이 있던 풍경을 남겨둔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은 나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도시는 그 공간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시간과 역사를 기억하며 자본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간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자본에 의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도시 풍경이라면, 지갑의 두께와 상관없이 모두를 위한 도시로 ‘진화’하려는 꿈을 꿔야 하지 않을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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