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이혼'

▲ 조민웅 기자

단란해 보이는 가족사진 한 장이 있다. 부모는 젊고, 외동아들은 열 살쯤 돼 보인다. 한여름 날 피서를 하는 듯 보이는 계곡에서 그들은 커다란 바위에 올라앉아 서로를 안으며 웃고 있다. 험한 세상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다. 그러나 이 가족의 ‘아름다운 날들’은 사진처럼 오래가지 않았다.

피서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은 이혼했다. 이유는 성격 차이와 경제 문제였다. 그때는 부모님의 결정이 마음의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성인이 되고 세상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부모님의 삶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두 분이 함께 가정을 꾸려나갔을 때와 달리 이혼 후 외롭고 더 고단한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혼녀’라는 사회적 냉대 속에서 일자리 하나 구하기가 어려웠고, 아버지는 수입이 반으로 줄자 본업 외에도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자식으로서 그런 모습이 마음 한 구석의 슬픔으로 자리한 적이 많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는 결혼을 경제적 이익에 따른 선택으로 봤다. 경제적 효용을 더 높게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결혼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베커의 이론대로라면 부모님의 ‘고생길’은 예정된 것이었다. 성혼 남녀가 얻게 될 효용과 가치를 포기하고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이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넌더리가 나는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했지만, ‘경제적 고난’이라는 이혼 후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분업과 특화에 기인하는 ‘규모의 경제’가 가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리라. 이혼은 서로를 편안하게 만든 듯했지만, 어린 자녀를 번듯하게 키우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 이혼은 서로를 편안하게 만든 듯했지만, 어린 자녀를 번듯하게 키우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 pixabay

2013년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이혼사유에서 ‘경제 문제’는, 전체의 47%를 차지하는 성격 차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결혼생활 중 한쪽이 큰 빚을 졌다거나, 그 전부터 빚이 있어 결혼생활이 도저히 어려운 경우다. 안 그래도 빈곤했던 자녀들은 ‘이혼 자녀’가 되어 더 궁핍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 폴 아마토에 따르면 이혼자녀의 ‘생활의 질’이 양부모 가정의 자녀보다 낮아 그런 아이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악순환에 봉착할 수 있다’고 한다. 빈곤한 가정환경에도 삐딱해지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는 부모님 말처럼 내가 유독 ‘멘탈’이 강한 것일까?

사실 나는 부모님의 재결합도 보았다. 가족사진은 내가 다섯 살 때 이미 한 번 이혼을 한 부모님이 다시 합친 뒤 이뤄진 정경이었다. 베커는 재혼을 ‘시간적 일부다처제’라고 했다. 일부다처제는 여러 부인들의 경제적 기여도를 이점으로 둔다. 그 대상이 가사든 외부근로든 노동생산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 명의 아내와 두 번 결혼한 아버지는 시간적 일부다처제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러나 재결합 이후 부모는 맞벌이를 했고, 우리 집 경제 사정은 썩 괜찮아졌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꼬마는 다른 가족들처럼 외식하고 싶었고, 제주도나 스키장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가족여행을 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때는 모든 소원이 이뤄졌었고, 그 이면에는 일부다처제의 이점과 유사한 ‘재결합의 경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따로 흩어지지 않고 오롯이 담긴 사진은 오직 한 장뿐이다. 그 후로 20여년이 흘렀지만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사진으로나마 추억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내 이혼 건수가 작년에만 하루 평균 300건이 넘었다는데, 나처럼 ‘한 장의 추억’마저 없는 이혼 자녀들은 어찌 해야 하나? ‘정말 그럴 결심했나요. 돌아서서 후회할 거 다 아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인디록밴드 ‘슈퍼키드’의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에 나오는 가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혼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경제적 관점에서 한마디만 하고 싶다. 그리 쉽게 이혼을 말하지 말아요.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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