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아파트’

▲ 이지민 기자

나는 이사 경험이 없다. 25년을 쭉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주택에서 살고 있다. 집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던 초등학생 때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작은 마당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학교가 끝나면 같은 골목에 사는 친구네 집 초인종을 한 번씩 누르며 집에 왔다. 엄마와 시장에 들르는 날은 양 손에 떡꼬치를 쥐어야 했고, 만화방 ‘책꾸러기’를 지날 때는 유혹을 참아야 했다. 우리 집에 가까워지면 매번 이름을 불러주던 세탁소 아주머니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구멍가게 아저씨를 지나가야 했다.

소중한 기억이 많은 집이고 오래된 이웃이 많은 동네지만 할머니 말고는 가족들 모두가 ‘아파트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비가 오면 물기가 번지는 천장의 한 모퉁이를 볼 때마다, 손만 한 바퀴벌레를 한밤중에 마주칠 때마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보일러를 가동하는 난방비도 비싸 겨울이 되면 엄마의 아파트 타령은 더 잦아졌다.

쾌적함과 편리함을 두루 갖춘 아파트는 땅이 좁은 한국에서는 어쩌면 선물 같은 존재다. 그런 엄마가 1년 전 아파트로 이사하는 소원을 이루었다. 아빠의 회사일 때문에 3년간 부산에 내려간 부모님이 부산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것이다. 1주일간 머문 아파트는 내게도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아파트는 같은 땅에 단독주택의 몇 십 배를 수용할 수 있는 효율의 산실이다.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를 내야 하는 아파트는 공간구조가 거의 같다. 외관도 거의 비슷해 동호수 표지가 없으면 집을 찾아가기도 힘들다. 쾌적성을 유지하기 위한 건축규제인 용적률도 계속 완화돼 아파트로 숲을 이룬 대단지가 즐비하다.

인공 숲에 머물렀던 1주일간 나는 단지 내에서 의식주를 해결했다. 세탁소나 슈퍼, 책 대여점에 가기 위해 거리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한편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보안이 강화되면서 그 자체가 울타리를 치고 문을 걸어 잠근 ‘빗장도시’(gated city)가 됐다. 일정한 수준의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폐쇄공간이 된 것이다. 골목길에 나서면 이웃 주민은 물론이고 단골 행상이나 만물상트럭까지 만날 수 있는 주택가 동네와는 전혀 다른 도시 공간이다.

▲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빗장도시'의 모습을 띈다. ⓒflickr

한국에만 유독 많은 아파트는 한국적 문제를 낳았다. 몇 년 전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에는 우유와 신문 등 배달원의 승강기 이용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나붙었다. 승강기를 많이 이용하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였다. ‘배달원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는 외부인에 대한 배제의 선언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을 보며 외부인임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당당하게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아파트의 상위 분류인 ‘공동주택’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공동’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끼리’를 의미하는 말로 변질됐다.

은마아파트 사례는 단지화가 낳은 차별과 배제의 일면에 불과하다. 한국 아파트의 ‘우리끼리’ 문화는 상당히 만연된 상태다. 지난 1월 경북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신입생 예비소집 때 학생들을 임대아파트와 고급분양아파트로 나눠 줄을 세웠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보금자리주택에 사는 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며 학교 배정을 철회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임대아파트로 통하는 길을 아예 봉쇄하기도 한다. 단지의 경계를 알리는 높은 담벼락에서 사람 냄새는 점점 멀어져 간다.

경제적 효율성과 편리함은 인간다운 삶과는 별개다. 담장 너머 옆집 아주머니가 건네던 인사가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대체될 수는 없다. 얼굴이 보이는 낮은 담장은 그 누구도 밖으로 밀어내거나 차단하지 않는다. 가을이면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눈을 치우느라 번거로웠지만, 오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눈을 맞췄다. ‘아파트는 답답하다’며 이사를 거부하는 할머니는 오늘도 허리를 굽혀 골목길을 비질한다.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위하여.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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