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행복’

▲ 이문예 기자

펠레폰네소스 전쟁 초기, 영리한 전술로 스파르타 연합군을 자진 철수하게 만들었던 아테네는 그 후 28년이나 전쟁을 질질 끌다 결국 패전의 길로 들어선다. 그 요인 중 하나가 아테네 성안에 퍼진 전염병이었다고 한다. 이때 주민의 1/3에 해당하는 1만여명이 사망했는데 아네테 전성기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이끌던 페리클레스도 병사했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병에 걸린 줄 알면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믿고 자포자기에 빠져 저항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절망에 사로잡힌다.” 투키디데스의 표현은 마치 이 시대 대한민국이 경계해야 할 ‘절망 블랙홀’이라는 전염병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 니콜라 푸생의 1930년작 '아테네 역병'. 역병으로 죽음의 공포가 짙어지자 아테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공동체 정신을 버리고 부도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 google

성숙 단계에 올라선 한국 경제는 ‘이제 성장은 없다’며 저성장 시대를 예고하고 있고, 정부는 2015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벼랑 끝에 몰아세웠다. 청년들에게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는 오명도 모자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4포세대’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절망이 꿈틀대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국민들은 절망만 하고 있을까?

새해 첫날 공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역설적 결과가 나왔다. ‘우리 국민은 행복한가’를 묻는 국민행복도에서는 ‘그렇지 않다’가 ‘그렇다’는 의견보다 3배나 많았지만, ‘당신은 행복한가’라며 개인행복도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51.5%가 행복하다고 답해 ‘행복하지 않다’는 의견보다 5배 더 많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 이유는 올해 초 출판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간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2011년 조사 결과 20대의 75%가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다. 좋은 차를 가지지 못한다 해도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니 부끄럽지 않고, 비싼 옷을 사지 않고도 스파(SPA: 빠른 유행 흐름에 맞춰 값싸게 공급하는) 브랜드에서 명품 디자인 옷을 입어볼 수 있으니 좋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정규직 못지 않은 돈을 벌면서도 정규직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니 괜찮다는 거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낙관적 미래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희망이 고갈된 미래에 적응하며 느끼는 행복인 셈이다. 하향평준화한 삶에서 느끼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이다.

행복하지 않은 국민들 속에서 행복한 개인을 보며 이미 우리 사회도 ‘절망 블랙홀’에 발을 들여놓은 게 아닌가 걱정된다. 두려운 것은 ‘절망’이 아니다. 현실을 힘없이 흡수하는 ‘저항력을 상실한 사회’가 더 두렵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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