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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 이상이다
[씨네토크] ‘인생’과 ‘국제시장’
2015년 03월 26일 (목) 16:39:19 이정희 기자 yargomaki@gmail.com

위화의 소설 <인생>은 한 노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주인공 ‘푸구이’는 자기 과거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가난하고 고생한 기억은 잊고 싶어 하겠지만 푸구이는 마치 젊은 시절을 다시 사는 것처럼 과거 이야기를 생생하게 끄집어낸다. ‘기구한 팔자’를 가진 푸구이는 동시대 사람들처럼 가난한 식구를 이끄는 가장이었다.

   
▲ 1994년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인생>의 포스터 ⓒ 네이버영화

장예모 감독은 소설 <인생>을 영화로 재구성했다. 소설이 푸구이의 개인사와 가족사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시대별로 주인공이 겪는 사회변화에 주목한다. 장 감독은 1940년대 국공내전, 1950년대 공산혁명,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현대사를 푸구이의 개인사를 통해 조명한다. 이 영화는 1994년 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으나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다. 영화 곳곳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불편한 역사가 담겼다는 정치적 이유로 상영이 금지된 탓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허구성을 가미하기도 한다. 때로는 허구성이 현실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푸구이의 선택은 아주 개인적이다. 역사의 격랑에서 개인이 하는 행위의 동기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려는 것이다. 푸구이는 국공내전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전쟁포로가 됐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공산혁명에 동참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의사가 사라진 병원에서 딸을 잃기도 한다.

영화 <국제시장>도 주인공 ‘달수’를 통해 거대한 서사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화는 감독이 선택한 기억을 관객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아버지에 대한 헌사’라고 말했다. 달수는 오직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흥남철수, 파독,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 등 굵직한 현대사를 다루면서도 정치적 대립이 생길만한 언급은 적극적으로 피해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두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논쟁은 좌우 갈등 또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대립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시절을 미화했다는 평과 산업화 세대의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는 평이 엇갈렸다. 누군가는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고 어떤 이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라고 혹평했다. 다양한 관점에서 주석이 나오는 것은, 문화라는 틀 안에서 담론이 오간다면, 문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편을 갈라 정색하고 달려드는 행태다. 최근 일본의 극우단체가 2차대전 때 일본군의 포로였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다룬 영화 <언브로큰>의 상영을 저지했다. 연출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의 입국도 반대했다. 문화의 틀을 넘어 정치적 해석이 지나치면 비상식적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같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면 영화의 노이즈 마케팅을 돕기도 한다. 김정은의 암살을 다룬 영화 <더 인터뷰>는 개봉 이틀 만에 북한에 유입됐다고 한다. 과잉해석에 따른 소통 부재는 중국 현대사를 다루었을 뿐 아니라 세계인이 보는 영화를 중국인들만 못 보는 우스운 꼴을 연출했다. <언브로큰> <더 인터뷰> <국제시장>은 그 점에서 같은 반열에 든 영화들이다. 

   
▲ 정치색 논란에 휩싸인 영화 <국제시장>의 포스터 ⓒ 네이버영화

<국제시장>을 만든 이들은 정치적 요소를 배제했다고 홍보했다. 비판하는 이들은 정치적 논란 자체가 거대 영화자본이 흥행을 위해 부추긴 고도의 상업주의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선과 악으로 나눠 자기 편이 아니면 단죄하고야 마는 우리네 풍토에 혀를 찼다. 영화에 정치가 끼어들면 왜 안 된다는 걸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가 아니던가?


 

[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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