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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를 팝니다, 조작해서라도
[씨네토크] ‘나이트 크롤러’가 한국 언론에 던지는 경고
2015년 03월 06일 (금) 16:25:35 김다솜 기자 uniqueds@nate.com

‘나이트 크롤러(night crawler)’.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의 직업이 영화를 통해 주목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댄 길로이 감독의 <나이트 크롤러>가 주요 개봉관에서 상영되면서부터다. 참혹한 살인사건 현장. 죽어가는 피해자의 초점 잃은 눈동자와, 찢긴 피부사이로 흘러내린 검붉은 피에 누군가 카메라를 바싹 들이댄다. 나이트 크롤러다. 사건, 사고 영상을 재빨리 찍어 돈을 받고 방송국에 넘기는 프리랜서 촬영가, 혹은 일종의 ‘파파라치’라고 할 수 있다. 나이트 크롤러는 원래 ‘(밤에 기어 다니는) 큰 지렁이’ 혹은 ‘밤에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란 뜻인데, 돈이 되는 영상을 잡기 위해 한밤중에 범죄 현장 등을 쫓아다니는 이들에게 꽤 어울리는 이름이다.

   
▲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댄 길로이 감독의 데뷔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수상은 못했지만 2015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 영화 <나이트 크롤러> 포스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나이트 크롤러를 ‘언론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단순히 영상을 촬영해 방송국에 넘긴다는 사실만으로 언론인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찍은 영상이 종종 방송뉴스의 핵심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카메라기자와 같은 언론인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나이트 크롤러처럼 실제 뉴스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방송국의 영상 공급자가 된 좀도둑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 분)이 나이트 크롤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밤중에 철도길 울타리, 맨홀 뚜껑과 같은 고철덩어리를 훔쳐 고물상에 팔아넘기는 도시의 ‘찌꺼기’였다. 그러다 우연히 사고 현장에서 나이트 크롤러인 조 로더(빌 팩스톤 분)를 만나면서 이런 일로 돈을 벌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중고시장에서 값싼 촬영 장비를 산 뒤 라디오 주파수 조작으로 경찰 무전을 도청하면서 사건 사고 현장에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한국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배우 제이크 질렌할은 영화 <나이트 크롤러>에서 LA 한인 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 촬영을 직접 제의했다고 한다.  ⓒ 영화 <나이트 크롤러> 화면 갈무리

처음 몇 번은 허탕을 쳤다. 그러다 한 총격사건 현장에서 얼떨결에 다른 나이트 크롤러보다 가까이에서 피해자의 모습을 잡았고, 지역방송사인 케이더블유엘에이(KWLA)에서 환대를 받는다. 

“우리가 방송할 것의 정수를 잡아내는 방법은 우리 뉴스를 목이 잘린 채 길을 뛰어 내려가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목이 잘린 채 길을 뛰어 내려가는 여자를 본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히면서도 눈길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심야뉴스 보도국장인 니나(르네 루소 분)는 시청률을 올릴 ‘자극적 뉴스’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꼽았다. 2년 계약직으로 실적에 따라 자리가 흔들리는 니나는 이미 시청률에 모든 것을 걸었다. 언론의 사명이나 윤리 따위는 그녀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니나의 말에서 ‘돈이 되는 영상’에 대한 ‘감’을 잡은 루이스는 더욱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 나선다. 

   
▲ 차량 추돌 사고 피해자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특종했다는 희열에 차있는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 분). ⓒ 영화 <나이트 크롤러> 화면 갈무리

그는 한 부부가 총격을 당한 집에 피해자 가족의 허락 없이 몰래 들어가 현장을 밀착 촬영한다. KWLA 보도국 안에서 ‘무허가 침입으로 얻은 영상을 쓸 수 없다’는 이의제기가 있었지만, 니나는 이를 무시하고 뉴스에 내보낸다. 루이스는 이제 더욱 과감해진다. 차량 추돌 사고가 발생한 곳에 경찰보다 먼저 도착한 루이스는 ‘더 생생한 영상’을 위해 생명이 위태로운 피해자의 다리를 끌어 자동차 헤드라이트 앞으로 이동시킨다. 죽어가는 피해자에게 카메라를 고정시키며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는 루이스의 얼굴은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전형으로 보인다. 길로이 감독은 수시로 제이크 질렌할(루이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질렌할은 표정과 눈빛의 변화만으로도 관객을 몰입시키며 영화의 90%이상을 혼자 끌어갔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루이스 블룸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언젠가는 규모 있는 나이트 크롤러 전문회사를 세우겠다는 야심도 갖는다. 한 주 동안 여러 차례 자신이 찍은 영상이 헤드라인에 걸리고, 한 때는 자신을 무시했던 조 로더까지 동업을 제의할 정도가 됐다. 루이스가 처음 일을 배울 때는 보도국장인 니나가 거대한 존재였지만, 이젠 루이스가 ‘갑’이 됐다. 영상의 가격을 높게 부르고 “원하는 만큼 주지 않으면 독점 관계가 깨질 것”이라고 위협도 한다. 

하지만 위기가 닥친다. 비행기 추락 사건이 발생해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한 발 늦었다. 경쟁자였던 조 로더가 독점 촬영했다. 이런 헛발질이 이어지고 시시한 영상만 찍게 되자 니나와 루이스의 관계도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니나는 루이스에게 “시청률도 안 나오는 영상을 가져왔다”며 소리를 지른다. 이 대목에서 루이스는 해서는 안 될 결심을 한다. 경쟁자인 조를 죽이기로 한 것이다. 루이스는 조의 차량에 사고가 나도록 손을 봤고, 결국 조는 목숨을 잃는다.  

   
▲ 백인 부촌의 총격 사건을 보도하는 KWLA 뉴스 영상.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 영화 <나이트 크롤러> 화면 갈무리

경쟁자를 제거한 후, 루이스에게 다시 운이 찾아 왔다. 우연히 백인들이 사는 부촌에서 벌어지는 총격 사건을 촬영하게 된 것이다. 현장은 참혹했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들을 찍은 영상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방송규정에 어긋날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있었지만 니나는 ‘호러(공포) 하우스’라는 제목을 달아 심야 톱뉴스로 내보낸다. 니나는 앵커에게 ‘끔찍’, ‘잔인’, ‘잔혹무도’ 등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표현을 반복하도록 주문한다. 니나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렸고 루이스는 명예회복과 함께 한달 뉴스제작비에 해당하는 거액을 손에 넣었다. 

   
▲ <나이트 크롤러>의 마지막 장면.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머쥔 루이스 블룸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 영화 <나이트 크롤러> 화면 갈무리

오직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루이스는 이제 더 큰 일을 벌인다. 백인부촌의 총격 사건을 촬영하다 용의자의 얼굴과 차량번호까지 알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다른 범행을 저지르도록 기다린 것이다. 그들을 미행하던 루이스는 용의자들이 식사를 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경찰에 전화를 건다. 루이스가 기대한 대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루이스는 경찰이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과 범인들이 도주하는 장면, 이어진 추격전까지 다 ‘성공적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경찰은 그가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건 아닌지 의심하지만 물증이 없어 체포하지 못한다. 영화의 다음 장면은 루이스가 드디어 자신의 회사를 차리는 모습이다. 윤리, 도덕을 저버린 것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가 ‘권선징악의 징벌’ 대신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은 미디어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서늘한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시청률에 목맨 일탈, 국내 방송계도 심상치 않아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뉴스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섬뜩한 것은 이것이 순수한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나이트 크롤러들이 지역방송사의 영상공급자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실제 나이트 크롤러들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2001년 한 방송국의 범죄고발 프로그램 진행자가 시청률을 높이려고 사람을 고용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 2011년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가 각목 살해 사건의 폐쇄회로(CCTV) 화면을 ‘특종’이라며 고스란히 내보낸 일이 있었다. 종합편성채널들이 등장한 이후에는 더욱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상과 자극적인 언어들이 앞 다투어 방송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종편 채널에서 방송 언어의 윤리기준을 위반하거나 선정성, 폭력성 등의 이유로 제재 받은 사례가 2012년 80건, 2013년 105건, 2014년 161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고 최근 발표했다. 

방송사간의 경쟁이 더욱 격렬해지고 종사자들의 주된 관심이 ‘수입’과 직결된 ‘시청률’에 집중될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질 것이다. 그러다보면 시청자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으며 자기 잇속을 챙기는 ‘니나’와 ‘루이스’의 세상, 언론인이 아니라 범죄자가 방송을 장악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우리 언론들이 <나이트 크롤러>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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