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식코'를 보고

국민건강 위협하는 미국의료보험

릭은 작업 중에 손가락 2개를 잘렸다. 약지는 다행히 살짝 붙었지만 중지는 완전히 절단됐다. 수술비용으로 약지 1만2000달러, 중지 6만 달러. 은퇴 후 특별한 수입이 없는 릭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래리는 심장질환을 앓고, 도나는 암에 걸렸다. 래리∙도나 부부는 치료비를 감당 못해 자식 집에 얹혀산다. 의료보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못 받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다. 약 5000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식코>는 미국의료제도의 모순을 낱낱이 고발한다.

▲ 1만2000달러를 내고 약지만 봉합수술 받은 릭. ⓒ영화<식코> 화면갈무리

현재 미국의 의료보험서비스는 국민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험업계는 정치권에 로비 해, 자신들에 유리한 법안을 계속해서 만든다. 상원의원 토우진은 2003년 보험업계의 이익을 늘리는 ‘의료보장제도 의약품 개선 및 현대화에 대한 법’을 통과시킨다. 그는 의회를 나와 보험회사 사장이 된다. 질병, 장애, 사망 등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성격을 띤 의료보험은 이미 상품화된 지 오래됐다. 보험회사는 의료보험에 가입하려는 고객에게 ‘신장과 체중상의 사유로 가입이 불가합니다’라며 거절한다. 마르거나 뚱뚱한 사람들은 보험가입조차 어렵다. 지난 40년간 보험업계와 제약업계는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한 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한 쪽은 손해를 보는 법.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미국인은 의료보험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보험을 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열악함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선진국의 의료보험제도로 눈을 돌린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의 국민은 자신이 낸 세금으로 거의 무료로 모든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의료보험제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추적한다. 닉슨 대통령 시절, 보험회사 에드거 카이저는 ‘새로운’ 의료체계가 필요하다며 로비를 벌인다. 현재 미국 의료보험체계를 만든 ‘의료민영화법’이 탄생한다. 이 법안은 모든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최소한의 의료보험을 보장함과 동시에 보험회사들이 시장 경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익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험회사는 서비스품질로 경쟁하지 않고 고객의 의료기록을 분석해 약점을 찾아낸다. 회사는 계약조건을 내세우며 고객의 보험료 지급요청을 거절한다. 낮은 보험 보장으로 국민은 고통받지만 돈을 적게 지출한 회사는 더 큰 이익을 남긴다. 닉슨 시절부터 현재까지 미국인의 의료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2012년 기준 8895달러(약 976만원)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돈이 없는 국민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고통 받고 있지만 이익창출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배경에 깔린 정치권과 보험업계의 유착을 조목조목 보여준다.

▲ 보험회사∙제약회사로부터 후원을 받는 상원의원들. ⓒ영화<식코> 화면갈무리

미국정부는 자국민에게 캐나다의 무상 의료보험체계가 끔찍하다고 왜곡한다. 접수와 처방받는데 몇 달이 걸리고, 수술은 열 달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인은 무료로 신속하게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공적보험이 탄탄한 영국과 프랑스도 의료비용이 거의 무료다. 캐나다와 영국의 의료보험체계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돈이 많건 적건, 직장이 있건 없건,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돈이 없으면 병원으로부터 버려진다.

미국 의료보험은 쿠바보다도 열악하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마이클은 릭, 래리∙도나, 레지 설번티 등 환자들과 함께 쿠바로 향한다. 이들은 쿠바 하바나 국립병원에 방문해 건강검진과 치료를 받는다. 쿠바는 외국인에게도 이름과 생일만 묻고 내국인과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레지 설번티는 9∙11 사건 당시 자원봉사하다 기도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뉴욕시 소속 구급기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녀는 쿠바 약국에서 흡인기를 사기로 했다. 흡인기는 기도 내 분비물을 빼내 숨을 쉬게 해주는 기구다. 미국에서는 하나에 120달러인데 쿠바에서는 단 5센트다.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미국인들이 최악의 빈민국가로 여기는 쿠바에서조차 한 해 1인당 250달러 정도 의료비를 내면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한심하다. 돈 없어 자신의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부자나라 방문객들은 가난한 쿠바의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코미디 같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 약국에서 흡인기를 사고 울먹이는 레지 설번티. ⓒ영화<식코> 화면갈무리

의료민영화와 국민의 기본권리, 건강권

영화가 끝나자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럼 우리 의료체계는?”이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보험료 재원의 20%를 정부가, 나머지 보험료는 가입자와 사용자가 반씩 부담해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시스템이다. 한국 의료보험은 민영화된 미국과 무상의료보험을 하는 프랑스, 영국의 중간쯤 위치한다.

‘건강권’은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건강권의 보장은 국가의 의무다. 시장의 자율화, 자유민주주의제도를 채택한 이유도 동일하다. 사람다운 삶의 보장을 위해서다. 마이클 무어는 <식코>를 통해 단순히 의료서비스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익중심의 ‘시장논리’가 ‘인간의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꼬집는다.

영화는 한 나라의 의료서비스를 누가 담당해야 옳은지 질문한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미국과 무료로 의료보장이 되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의 의료체계 중 어느 것이 맞는가. <식코>는 의료서비스가 시장논리에 의해서 운영될 때 인간의 삶이 얼마만큼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 답을 찾는다.

 

▲ 정부는 지난 8월 12일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보건의료분야 투자활성화 대책'을 논의했다. ⓒ YTN <뉴스나이트> 화면 갈무리

지난 9월 19일 의료법인 영리 자(子)법인 설립을 골자로 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공표 ·시행됐다. 의료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논란 속에 의료법인은 외국인환자 유치업, 여행업, 목욕장업 등 영리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가 인간보다 영리를 우선할 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식코>는 의료민영화가 가져올 폐해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이후를 철저히 감시하고 앞으로 진행될 의료 민영화의 문제점들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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