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마이클 무어의 유쾌한 도발,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계급투쟁, 미국의 현주소

“이것은 계급투쟁이다. 내 계급이 이기고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오늘날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의 투쟁이 돼버린 자본주의 체제를 이렇게 비판했다. 명실공히 세계 경제사회를 이끄는 체제로서 불멸할 것 같았던 자본주의는 오늘날 금권만능주의로 타락했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다큐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그 선봉장이 마이클 무어다. 그는 1989년 <로저와 나>에서 GM모터스라는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 벌인 대규모 해고 사태의 이면을 조명했다. GM은 임금을 줄이기 위해 경영난을 내세워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멕시코에 공장을 짓기로 한다. 미국 플린트에 있던 공장은 폐쇄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로저와 나>는 자본권력의 이기주의로 삶이 피폐해진 서민들을 통해 미국의 빈부 격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2008년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일으킨 월가의 대표적인 금융 그룹들을 고발했다. 기업은 지속적인 부의 축재를 위해 고이율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팔고, 정부는 기업들의 부당이득을 봐주며 사기성 주택담보대출에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자택에서 몰아낸다. 복잡한 금융시스템의 실체를 알아채지 못했던 국민들은 속절없이 피해자가 되고 만다. 무어는 영화에서 ‘복지, 연합, 우리’라는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단어들이 조합된 헌법을 보여준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맹주 미국의 타락한 현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미국 헌법원문엔 '자유시장, 자유기업, 자본주의' 대신 '복지, 우리, 연합'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 <자본주의: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즐거운 선동가, 마이클 무어

무어의 영화는 유쾌하다. 담고 있는 내용은 진부할 수도 있지만, 이를 드러내는 기법은 참신하다. 영화 초반 고대 로마 제국과 지금의 미국을 비교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미국과 로마 제국 사이의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무어는 장엄했던 고대 로마제국을 망국으로 이끈 부패의 씨앗들을 나열한다. 동시에 현재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의 여러 장면들을 보여주며,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제국’이 노예에 의존하는 불건전한 경제와 빈부의 격차, 빈민가의 확대 등 멸망 직전의 로마 제국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사실의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 정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피해자였던 주민이 자택에서 퇴거하지 않자 지역 보안관들이 수대의 경찰차를 타고 와 문을 부수고 결국 주민을 내쫓는다.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 사기성 주택담보대출의 피해자인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집 문을 부수는 관할 경찰들. ⓒ <자본주의: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무어가 ‘정신 나간 선동가’, ‘좌파 출세주의자’라는 비판도 있다. 무어의 영화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의 시각은 오롯이 신자유주의의 추종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회경제체제는 ‘금권주의(plutonomy)’라고 믿는 자들의 자기변명이다. 어긋난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무어가 그들에겐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어는 멈추지 않았다. 무어는 글로벌 금융기업인 시티그룹의 비밀문건을 확보해 사회가 오로지 1%의 이익에 종사하고 있고, 그 1%의 재력은 하위 95%의 합과 맞먹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고대 로마의 귀족금권정치가 21세기에 다시 도래했고 소수 귀족 중심의 경제사회체제가 계속될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면서 상위 1% 가진 자들의 두려움은 “One Person, One Vote.”임을 지적한다. ‘사회가 부의 분배를 공정히 분배하기를 요구한다’는 명제는 상위 1%가 아닌 시민의 것이다. 즉, 민주주의를 잊어버린 미국에서 다시 미국을 살릴 저력은 시민의 정치 참여에 있음을 강조한다. 무어는 이 시티그룹의 비밀문건에 따라 1%의 재력가들이 95%의 빈자들보다 우월한 경제적 능력을 가졌지만, 빈자들이 가진 99%의 투표권 앞에선 부자들은 하루살이와 다름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세상의 돈은 1%의 부자들이 다 가졌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99%의 빈자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무어는 가진 돈에 비례해 영향력이 강해진다는 ‘1원1표’의 시장원리 속에서 점차 정치참여의 기회를 잃어가는 빈자들에게 동등한 영향력을 주는 ‘1인1표’의 희망을 보여준다.

▲ 무어가 공개한 시티은행의 비밀문건에선 사회가 오로지 1%의 이익에 종사하는 '금권주의'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 <자본주의: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자본주의는 썩었다

무어는 ‘자본주의는 썩었다’는 약자들 주장뿐 아니라 권력자들이 가진 핑계나 주장을 담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다큐멘터리 작가의 ‘객관적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주민들이 쫓겨난 주택을 되파는 자신의 행위에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언론인은 민주주의가 번영하는 국가경제사회를 만들어 주지 못하지만 자본주의는 오히려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고 경쟁의 장을 마련해준다며 찬양한다. 자본을 대변하는 부동산업자와 언론인의 잘못된 러브스토리를 담아내면서, 무어는 자본주의의 변질이 사람들로부터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반대 입장의 이야기를 담아내면 그 주관은 객관성을 갖는다. 바로 그 시점부터 제작자의 주장은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 내고, 영화는 더 이상 작가의 주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객관적 주관’의 탄생이다.

▲ 통고 없는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대중의 권력만이 진짜 권력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민중의 힘을 보여준다. ⓒ <자본주의: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영화 후반부에서 무어는 자본주의의 폐단에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서민들은 탐욕스런 자본주의자들의 약탈을 더 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며 그들에게 빼앗긴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가고,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된 일터를 점거하고 노동권과 교섭권을 향유하며 마침내 정당한 임금과 복직을 쟁취한다. 그리고 부당한 이유로 빼앗긴 집, 직장, 복지가 없도록 애쓰는 보안관, 하원의원,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들의 지원군이 된다. 무어는 자본주의 신봉자들처럼 ‘자본주의가 최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썩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력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해 민주주의를 번영시키자고 말한다.

▲ 무어는 "자본주의는 악"이라며 사태의 주범인 월가의 금융기업 건물 주위에 폴리스라인을 두른다. ⓒ <자본주의: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자본주의가 장밋빛이 아니라는 진실을 담아냈다.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명료하다.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를 신봉하고 올인(All in)하고 있는 한국, 그리고 세계가 그 진실을 깨닫고 장밋빛 자본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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