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황종원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의 국회 통과를 전후해 많은 신문방송이 분노에 찬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21세기 연좌제”, “중우정치 끝판”, “물타기식 입법” 등 날 선 비난이 이어졌다. 당초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겨냥했던 김영란법에 사립교원과 언론인이 적용 대상으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은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직자를 규율하기 위한 법을 ‘민간’ 언론인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했다. 또 언론인이 금품수수와 청탁의 집중적 감시대상이 됨으로써 취재활동이 제약되고 언론자유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력기관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 법이 언론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청와대나 집권당에 비판적 기사를 쓰는 기자를 수사당국이 표적으로 찍어 추적하고 ‘털어 볼’ 경우, 죄가 있든 없든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검경이 국가보안법의 모호한 규정을 악용해 진보 인사를 탄압했던 전력이 있고, 박근혜 정부가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을 고소·고발한 사례도 많기 때문에 이를 공연한 걱정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국민 대다수가 ‘부패청산 없이는 더 이상 나라 발전이 어렵다’는 취지에서 적극 지지한,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국민 다수는 이 법에 언론인을 포함하는 데 대해서도 찬성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응답자의 68.4%가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게 옳다’고 답했고 <JTBC>의 여론조사결과도 비슷했다. 관행화한 접대와 향응 등이 낳은 언론과 권력·자본의 유착,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는 ‘거래’가 빚어낸 불공정한 보도 등 ‘시민을 배신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반영된 여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잉수사로 언론 탄압이 우려된다면 이를 막을 조사요건 강화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지, 이미 통과된 법을 되돌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입법, 행정, 사법부에 이어 언론을 ‘제4부’라고 할 만큼 민주사회 유지에 언론의 감시견(watchdog)역할과 공론장(forum)기능이 중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언론의 부패를 막자는 법안을 거부해선 안 될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반부패인식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청렴도가 OECD평균만 돼도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39달러가량 상승하고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65% 올라간다”는 보고서를 낸 일이 있다. 세계은행도 국가의 청렴, 신뢰, 윤리 등의 지수가 국부 증진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부패한 사회에선 공정 경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떨어지지만, 공정 경쟁이 보장된 사회에서는 일한 만큼 보상받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할 맛’을 느끼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부창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경제가 더 성장하기 위해 김영란법 정착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의 최초 발의자라고 할 수 있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공짜 대접은 없다”며 “이 법은 더치페이(각자부담) 법”이라고 말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접대 없이 정당하게 업무를 수행해온 기업과 조직들이 더 이상 상대적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다. 향응과 청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던 사람들도 당당하게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인의 경우 당장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접대라 할지라도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호의를 자주 받아들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편에서 세상을 보고 논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 법 시행을 계기로 이런 고리를 끊는다면 ‘오직 독자(시청자)만을 두렵게 여기는 보도’가 되살아나고, 추락한 언론의 신뢰도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법 시행에 앞서 힘 있는 언론들이 할 일은 지금 같은 ‘총력 저항’이 아니다. 왜 언론이 ‘김영란법 적용’의 지경까지 왔는지 뼈저리게 자성하고, 이 법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깨끗한 언론풍토를 만들자고 이를 악무는 일이다.
단비뉴스 영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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