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계희수 기자

▲ 계희수 기자

지구 상에 살고 있는 펭귄 중 몸집이 가장 큰 것은 황제펭귄인데, 전 생애를 남극에서 보낸다. '황제'라는 이름이 붙어 안락하고 우아하게 살 것 같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와 생태계 파괴로 몸살을 앓는 처지다. 이 펭귄은 특히 자식 사랑으로 유명하다. 황제펭귄 수십 마리가 새끼들을 가운데 몰아넣고 빽빽이 둘러싸 추위를 막아주는 장면은 콧등이 시큰할 정도다. 그런데 이처럼 눈물겨운 자식 사랑을 황제펭귄 못지않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지난해 말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대신해 국민들에게 사과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다. 그는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고 머리를 깊이 숙이며 ‘부정(父情)’을 드러내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반성과 사과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을 반성하고 누구에게 사과해야 할지를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잘못된 자식 교육을 자책했다. 하지만 조 회장의 가장 큰 과오는 자식을 제대로 못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질이 부족하고 능력 검증도 안 된 사람을 세계적인 항공사의 고위 임원직에 앉힌 것이다.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경영자로서의 검증도 경쟁도 없이 요직에 기용할 만큼 기업을 개인소유물로 여겨왔던 데 대해 먼저 통렬히 반성했어야 한다. 또 이번 사건의 직간접적 피해자인 승무원과 사무장 등 종업원들에 대한 사과가 빠졌기 때문에 조 회장의 숙여진 고개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 조 전 부사장의 재판에 꼭 출석할 이유가 없는데도 조 회장이 증인으로 나서 선처를 호소한 것 역시 재벌총수로서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 MBC 창사 50주년 특집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황제펭귄이 허들링을 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MBC 홈페이지 갈무리

황제펭귄과 회장님은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펭귄 수컷은 알을 자신의 발아래에 품고 부화시키는데, 냉기 때문에 알 속의 새끼가 죽는 일이 없도록 절대 알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한다. 재벌 회장님들도 자신의 자녀들이 이 사회의 ‘거친 바닥’에 상처 입을세라 유학을 보내고, 돌아와 입사하면 평균 3.5년 만에 임원을 시켜준다. 회장님의 자녀들은 ‘입사전쟁’을 치르고 들어온 대다수의 평사원들, 즉 ‘을’들과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거나 공감할 일이 거의 없이 그들만의 ‘구름 위’ 세계를 살아간다. 차이가 있다면 황제펭귄은 자식을 살리자는 것이고, 회장님은 자식을 누구보다 '잘 살게' 만들려는 것이다. 자식이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겠지만 더 많이 누리기 위해 남을 짓밟고, 법을 무시하고, '갑질'하는 것까지 방임하는 부모의 사랑은 추악함을 넘어 비극적이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 보듯 결국 그것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황제펭귄들은 원형으로 서로의 몸을 바짝 밀착하는 '허들링'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딘다. 그들은 따뜻한 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대신 안과 밖을 번갈아 서며 온기를 나눈다. 그게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방법임을 잘 아는 것이다. 우리나라 회장님들과 그 일가에게 이런 '공생'의 정신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회장님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산처럼 쌓이는 동안 대다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나아지지 않는 소득, 슬그머니 올라가는 세금에 휘청거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 한파가 힘없는 ‘을’들에게 더욱 가혹해지는 요즘, 어쩐지 인간보다 펭귄이 더 위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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