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성훈 기자

▲ 이성훈 기자

지난해 1월 박근혜 대통령이 들고 나왔던 ‘통일대박론’이 올 연초 각 부처의 업무보고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해양수산부는 북한과 서해 무인도를 공동개발하고, 수산과 양식업 분야의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남북철도와 도로의 연결을 위해 사전 작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통일부는 한반도종단철도를 가동하기 위해 서울과 신의주, 나진을 잇는 철도시범운행을 북측에 제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럴 듯한 계획들이지만 사실은 ‘말의 성찬’일 뿐이다. 남북관계는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5년 째 제대로 마주 앉아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냉랭하다. 기초적인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인력과 물자가 군사대치구역을 오가야 하는 대규모 사업을 거론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다. 통일을 두 집안의 결혼이라고 본다면, 박근혜 정부의 통일 구상은 만나서 사귈 길도 막막한 형편에 ‘결혼은 대박‘이라고 소리만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결혼도 경제활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하면서 “둘이 살면서 얻는 편익(만족)이 혼자 살 때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비로소 결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남북의 통일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대화와 협력을 거듭하며 서로의 진심과 형편, 기대를 파악하고 믿음을 쌓았을 때 비로소 통일이라는 하나의 방향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지난 5년 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없으면 모든 교류협력을 중단한다는 ‘5.24조치’에 막혀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선언 등 번지르르한 통일 구상을 수시로 내놨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대한 ‘벌크캐시(대량현금)’ 제공을 금지한 유엔(UN) 제재를 이유로 ‘통일로 가는 길’을 더 단단히 막아왔을 뿐이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요구하며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고, 우리 정부가 이처럼 ‘구호 따로, 실천 따로’의 통일정책을 고집하는 동안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더 의존하는 구조가 됐다. 그러면서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등 핵무기의 완성도를 몇 배나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전략적 인내’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판정이 났지만, 안보위협에 시달리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별로 아쉬울 게 없다. 미국은 북핵 능력이 어느 정도 강화되더라도 오히려 이를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의 명분으로 삼고 우리와 일본 등에 첨단무기를 팔아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경제적 궁핍을 이용해 각종 자원과 항구이용권 등을 헐값에 살 수 있고, 일본은 북핵을 핑계로 자위권 강화 등 군사적 재무장을 추진할 수 있다. 

▲ 박근혜 정부의 통일 구상은 만나서 사귈 길도 막막한 형편에 ‘결혼은 대박‘이라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 KBS 뉴스 7 화면 갈무리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는 6자 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의 평화적 통일에 징검다리를 놓는 ‘중매쟁이’가 돼 줄 수 있지만 이들이 ‘혼인의 성사’를 진짜로 원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오히려 악화된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이용해 각자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남북관계가 나빠질수록 주변국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높아지고 외교적 입지는 불리해지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중·일·러라는 중매쟁이에 더 이상 기대지 말고, 지금이라도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핵을 포기하고 과거의 무력도발을 사과하라’는 요구는 대화를 하면서 풀어나갈 의제의 하나로 삼고, 우선 마주 앉아 얘기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기댈 것이라곤 핵능력 강화밖에 없는 북한 정권의 특수성을 감안, 경제협력을 통해 이익공유의 폭을 넓히면서 점진적으로 핵포기를 유도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경협을 막고 있는 5.24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제하는 결단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 내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통 큰 양보를 통해 협력의 물꼬를 트는 것이 경제적으로, 외교안보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통일 대박’의 공허한 구호 대신, 실현가능한 로드맵이 담긴 ‘진심어린 프로포즈’를 박 대통령이 내놓아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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