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유선희 기자

   
▲ 유선희 기자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벽을 쌓는 사람도 있고, 풍차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코드그린>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 중국 속담을 인용하며 미국의 에너지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물었다. 석유에 중독된 나머지 아랍의 독재정권들에 끊임없이 ‘오일머니’를 대주면서 가속화하는 분쟁과 기후변화 위험에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화석연료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박차를 가해 세계평화와 안전한 생태계로 가는 길을 확보할 것인가. 그는 미국 전역에서 소규모 분산 방식으로 신재생에너지라는 ‘풍차’를 만들고 정보기술을 통해 이를 연결함으로써 ‘그린 아메리카’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100%에 가까운 우리나라 역시 주목해야 할 제안이었다. 

프리드먼이 2008년 펴낸 이 책에서 거론한 ‘바람’은 고유가, 중동 분쟁, 지구온난화 등에 따라 ‘석유전성시대’와 반대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었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라는 풍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최근 ‘교란요인’이 생겼다. 미국의 셰일오일 등으로 석유공급이 늘고 세계적인 경기정체로 수요는 줄면서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신재생에너지라는 풍차를 만들던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수준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아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처럼 유가가 50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투자의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태양광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당시 신재생에너지 붐이 일었다가 1980년대 유가하락과 더불어 퇴조했던 전철을 밟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국제원유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석유, 가스 등 에너지원의 96.5%를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에 아무리 셰일석유가 쏟아져도 우리는 사다 써야 하고, 변덕스런 국제유가가 언젠가 치솟는 방향으로 돌아서면 우리경제는 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당해내야 한다. 지금 일시적으로 유가가 떨어졌다고 대체에너지 개발을 소홀히 하면 우리경제는 산유국의 정세불안, 달러가치의 변동 등 바깥의 파도에 따라 늘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이 땅 어디에나 있는 햇빛, 바람, 물, 지열, 폐기물 등을 활용하는 신재생에너지는 우리의 에너지자립을 위해 흔들림 없이 연구개발하고 투자해야 할 중요한 자원이다. 

▲ 제주 행원리 마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들이 돌고 있다. ⓒ 조수진

보다 근본적으로 신재생에너지개발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긴요한 과제다. 지구온도를 높이는 탄소를 대거 배출해서 기상재해와 신종질병, 생물멸종 등을 낳는 화석연료와 달리 태양광, 풍력, 지열,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는 훨씬 ‘깨끗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영원히 지속돼 기름값 걱정이 없어진다고 해도 석유시대를 빨리 탈출해야만 하는 것은 경제적 안정 이전에 지구생태계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의 과학자들은 각국이 전력을 다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몇십년 내에 인간이 지구에 살 수 없는 시점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저유가 환경은 풍차 만드는 노력을 이완시킬 수도 있지만, 잘만 활용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작업을 추진시킬 수도 있다. 태양광, 해상풍력 등 모든 신재생에너지도 설비투자 단계에서는 기름을 쓸 수밖에 없으니 저유가는 투자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류의 소비자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은 화석연료 등에 ‘탄소세’를 붙여 신재생에너지투자 지원을 위한 재정을 확충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일시적인 유가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화석연료시대를 벗어나 신재생에너지시대를 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전체 전력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원 비중이 이미 30%에 육박하는 독일은 정부의 일관된 의지와 합리적 정책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바람의 방향은 이미 확실하게 바뀌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쓸 만한 풍차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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