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갑질'

지난달 경기도 부천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한국사회 어록에 남을 만한 말이 등장했다. “내가 오늘 백화점에서 740만원 쓰고 나왔어.” 백화점 고객이 재주차를 요구하는 주차 직원에게 던진 말이다. 작정하고 한 말이기보다는 화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의식과 가치관을 드러낸 말이라고 유추할 수 있으리라. 돈이 많고 적음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고 돈이 인간관계를 맺는 척도로 여겨지는 풍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그날 1000만원 쓴 고객은 그 모녀를 무릎 꿇릴 수도 있다. “너 몇 살이야?” “너 어디 사람이야?” “너 무슨 학교 나왔어?” 예전에는 그런 질문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면 이제 “얼마 쓰는 사람이냐”가 중요한 척도가 됐다.
<미생>과 ‘모녀 갑질 사건’이 유발하는 분노의 원인은 같다. 노동자의 인권을 등급화하는 사회. 정규직과 계약직, 백화점 소비자와 주차장 아르바이트 직원은 한국사회에서 다른 등급으로 대우받는다. 우리사회 노동자 사이에는 이 둘 말고도 수많은 등급이 있다. 그 등급을 정하는 기준은 학벌, 지역, 나이, 돈, 직업, 성별 등이다. 기준에 따라 모든 관계에서 갑과 을이 정해진다. 하루 740만원 쓰는 사람은 시간당 급여가 7400원이 안 되는 노동자에게 “무릎 꿇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돈’이 인간을 전면적으로 등급화한 건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지만 본격화한 건 역시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경쟁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깔리고 소수의 자본권력이 이를 부추겼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은 ‘경쟁’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는 꼬임에 쉽게 설득당했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권력은 재빨리 또 다른 당근을 제시한다. ‘경쟁’을 하면 ‘자기들’처럼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다시 경쟁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고픈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헐값으로 추락한 인권과 ‘돈이 권력’이라는 ‘그들’의 헤게모니다.

등급은 더욱 세분화했고, 등급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경쟁지상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대형마트 판매대에 붙어있는 가격표처럼 만들어버렸다. 집중화한 자본권력이 대형마트 소비자처럼 선호하는 것이 있다. 동일한 가치를 갖는 상품을 싼값에 조달하려는 행동이다. ‘1+1’ 상품을 좋아하는 소비자, 그리고 정규직원과 같은 일을 하지만 급여는 절반 정도인 계약직원을 좋아하는 사용자가 무엇이 다른가? 특가 상품을 좋아하는 소비자와 청년이 가진 열정으로 적은 급여를 감내하라는 ‘열정페이’를 좋아하는 사용자가 무엇이 다른가?
프랑스 작가 스테판 에셀은 저서 <분노하라>에서 현대인이 마땅히 분노해야 할 대상을 두 가지 제시한다. 불평등과 인권.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는 하나의 이야기다. 노동자의 존엄성, 노동가치가 정당하게 대우 받는다면, ‘불평등’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인권’이라는 말은 굳이 거론될 일이 없을 것이다. 진보하는 사회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다. 다시 말해 소수의 자본권력만이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가 다수인 우리 사회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다. 식용유와 스팸의 차별을, ‘740만원 권력’의 부당성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라야 한다.
|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