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청초 기자
최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을 보면서 카프카 소설의 ‘법의 문’이 떠올랐다. 노동자를 지켜주기 위한 근로기준법이 문밖에 내몰린 노동자를 격리하는 ‘빗장’이 됐기 때문이다. 2000일 넘게 싸워 온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영원한 해고 통보’에 눈코가 새빨개질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하필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난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44주기였다. 제 몸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이 쌍용차 판결을 봤다면, 그날의 희생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24조 ‘정리해고 요건‘에 따라 쌍용차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있었고, 사측의 해고 회피 노력도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정리해고 조항은 김대중 정권 시절 외환위기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당초 취지는 불가피한 인력감축을 허용하되 무분별한 해고를 막기 위해 사측이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입증하고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이 조항을 노동자들을 내쫓는 데 적극 활용했다. 법원은 여기에 발 맞춰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점점 더 너그럽게 판단했고, 이번 판결에선 ‘장래에 닥쳐올 잠재적 위기’까지 이해해 주었다. 해고를 제한하기 위한 규정이 사실상 ‘무제한 해고의 면허증’처럼 쓰이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여당은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며 정규직 해고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안을 들고 나왔다. 노동계의 반발로 일단 한 발 물러섰지만 ‘정규직 과보호가 문제’라는 주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는다. 정말로 우리나라의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지수는 34개 회원국 중 23위로 명백한 하위권이다. 정규직 보호수준이 형편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직접적인 정리해고 외에 명예퇴직 등 우회적이고 편법적인 인원정리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고 후 삶을 지원해주는 복지안전망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라고 절규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노동자는 사용자와 함께 기업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낡은 소모품을 새것으로 갈아 치우듯 함부로 해고해선 안 되는 이유다. 특히나 쌍용차의 경우처럼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사주와 경영진을 놔두고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더욱 용납하기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와 해고 회피 노력 등의 원칙만 제시할 뿐 구체적 요건을 정하지 않아 자의적으로 악용되기 쉽다.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해고자 선정 기준이나 해고 회피수단 등에 대한 세부규정을 두고, 일정 규모 이상의 정리해고는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이런 내용으로 법을 손질하는 것과 함께 실직근로자의 재취업 지원 등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하는 노력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1970년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은 전태일의 죽음을 불렀고, 2014년 ‘사용자의 무기가 된 근로기준법’은 쌍용차 노동자의 절망을 불렀다. 정부여당과 사법부, 사용자가 문지기처럼 막아선 법의 울타리 밖에서 이 땅의 노동자들은 하염없이 서성이고 있다. 일자리는 노동자에게 생존권의 문제다. 근로기준법은 기업의 돈벌이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주어야 마땅하다. 더 늦기 전에, 노동자에게도 ‘법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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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부장, 청년팀
한 번 문 건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