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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택배와 대통령의 명예
[단비발언대] 박채린 기자
2014년 12월 17일 (수) 21:37:26 박채린 기자 cpfmsl@naver.com

“고객님 택배를 오늘 배달 예정입니다. OO우체국 김OO.”
“회사동료 OOO님이 고객님 택배를 대신 수령하셨습니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은 물건이 언제 도착하는지, 부재중일 때 누가 대신 받았는지 등을 친절히 알려주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편의점 택배 등에 비해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연락도 없이 문 앞에 물건을 놓고 가버리기도 하는 민간 택배사보다 훨씬 믿음이 간다. 그래서인지 한 인터넷 사이트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부기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자 우체국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검찰, 경찰, 국세청, 교육청, 식약청, 기상청 등 9개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설문에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응답자 2만5231명 중 80%이상이 우체국을 골랐다.

반면 검찰은 126표를 얻어 꼴찌였고, 경찰과 국정원이 각각 2% 남짓한 382표와 389표로 6위, 5위를 기록했다. 청와대는 선택항목에 없었지만 검찰 등 권력기관이 받은 이런 점수는 이들을 통솔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청와대 비서진의 명예훼손 고소, '박 대통령 7시간 미스테리' 칼럼을 쓴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쓴 소리 하는 언론들에 대한 대통령 우회적 공격은 바닥에 떨어진 신뢰와 명예에 대한 초조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지난 12월 10일 이른바 비선 실세 의혹이 담긴 문건의 당사자인 정윤회 씨가 검찰에 출석했다. 정 씨는 '불장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을 향해 제기된 '비선 실세'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정권 말기도 아닌 고작 집권 2년차에 불거진 ‘국정농단’ 의혹은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부를 수도 있어 청와대에 더욱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비서진 8명이 언론사를 고소한 것은 권력을 동원한 언론탄압의 소지가 크다. <세계일보>가 의혹을 제기한 문제는 국민이 선출한 적 없는 정체불명의 개인, 즉 대통령의 전 측근 정윤회씨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통해 정부의 주요 인사를 좌우하는 등 국정을 어지럽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지극히 공익적인 관심사로, 마땅히 진상을 규명해서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고 사실과 다른 보도였다면 정정보도를 청구하면 되는 일이다.

언론의 주요 사명 중 하나는 공직자 또는 공직사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공직자에게는 많은 권한과 책임이 위임되기 때문에 강도 높은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 직업적인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은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현실적인 악의(actual malice)'가 있음을 공직자 쪽에서 입증하지 못하는 한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으며, 우리나라 사법부도 ‘공직자에 대한 감시‧비판 기능이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권력자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곧 민주주의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며, 공직자들은 일반인과 달리 언론 등에 접근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론할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우리 법원의 판례를 종합하면 언론의 공직자 비판 보도에 부분적인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보도의 목적이 공적인 관심에 따른 것이고(공익성), 전체적인 내용이 진실이거나 보도 당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진실성 혹은 상당성)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정윤회 의혹 사건의 보도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 28일의  <세계일보> 보도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가 된 청와대 내부문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상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또 박 대통령이 승마협회 문제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관여했다는 <한겨레> 보도와 유진룡 전 문화부장관의 증언 등을 볼 때 ‘진실성 혹은 상당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두루 존재한다. 대통령의 ‘비선(秘線) 측근’이 주요 정부 인사를 좌우했다는 의혹은 국민이 반드시 진상을 알아야 할 ‘공익적’ 사안이다. <세계일보>가 철저한 검증과 반론까지 담아 보도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런 기사에 대한 대통령의 우회적 명예훼손 고소와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는 민주주의의 토대인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언론은 ‘제4부’로 비유되곤 한다. 입법, 행정, 사법부를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만든다는 의미에서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오랜 속담처럼 언론은 쓴 소리를 통해 사회의 건강을 지킨다. 바른 소리를 하도 많이 한 탓에 일생 동안 삭탈관직과 복직을 반복한 조선 중기 문신 기대승은 “언로가 열리면 국가가 안정되고, 막히면 위태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찌라시’에 의해 난도질당했다고 생각하는 명예는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고, 투명한 국정운영 등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지킬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우체국의 신뢰도가 높은 것은 정확한 배송이라는 약속, 혹은 조직의 사명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배달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신속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한 덕이 크다. 지난 9일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9%대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떨어진 지지율을 어떻게 회복할지 고민한다면, 진실을 묻는 국민 앞에서 ‘감추고 포장하는’ 행보 대신 기대승의 한 마디를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천하의 모든 일은 시비가 분명한 뒤에야, 인심이 기꺼이 복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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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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