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배상철 기자

▲ 배상철 기자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는 오래 전 큰 부리에 화려한 깃털을 가진 도도새(dodo bird)가 살았다고 한다. 사람을 도통 경계하지 않아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는 이름이 붙은 이 새는 1505년경 섬을 발견한 포르투갈인들에게 손쉬운 사냥감이 됐다. 식량 등으로 남획된 결과 1681년 무렵  도도새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도도새의 멸종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였던 이 섬에 비극의 신호탄이 됐다. 도도새가 열매를 먹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씨앗이 싹트는 것을 도왔던 도도나무(칼리바리아)가 줄어들었고, 쥐와 돼지 등 외래종의 영향까지 겹쳐 섬의 희귀종 동식물이 잇달아 사라졌던 것이다. 

▲ 도도새의 멸종은 모리셔스섬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림은 룰란트 사베리(Roelant Savery)가 그린 도도새.

최근 지구온난화로 멸종하는 동식물이 늘어나면서 ‘생물다양성의 손실이 결국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것은 이처럼 생태계가 뗄 수 없는 사슬로 서로 촘촘히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양성이란 게 생물생태계에만 중요할까. 인간이 만든 사회에도 다양성은 중요한 요소다. 여러 가치가 공존하고 경합하는 과정에서 문화가 발전하고 민주주의의 토대가 튼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정치적 결사를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당들 간의 이념과 정책 경쟁이 활발해야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이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결정을 내린 것은 ‘민주주의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헌재는 통진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비슷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기 때문에 헌법 8조4항의 ‘정당해산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계헌법재판기관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가 발표한 ‘정당의 금지와 해산 및 유사 조치에 관한 지침’은 민주적 헌법질서 전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사용을 주장하는 정당에만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구성원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면 해산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한마디로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통진당의 ‘이적성’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이석기 등의 ‘내란관련사건’을 토대로 성급히 해산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통진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사건, 관악을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 등도 정당해산의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부정경선 등은 실정법으로 엄히 처벌하고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에 맡겨야 할 사안이지, 정당해산의 사유로 보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정당을 해산시킨다면 불법정치자금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차떼기 당’은 왜 놔뒀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한때 국회에서 13개 의석을 차지했던 통진당은 경선부정과 이석기 사태 등이 불거진 후 당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통진당에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유권자가 판단한다면 여론의 심판대와 선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법리적 시비를 떠나 이번 헌재의 결정이 두려움과 충격을 주는 것은 그 여파가 시민들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까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는 소수지만, 통진당이 대의민주체제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된 ‘진보적 민주주의’, 일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회 모순을 극복하겠다는 ‘민중주권’ 등 통진당의 이념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담론의 일부였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권위주의에서 벗어난 민주주의의 징표였다. 헌재에 정당해산심판권을 준 것은 집권층의 자의적 정당 탄압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8대 1’로 보수화한 헌재가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셈이다.  

일부 극우단체들은 헌재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 통진당의 10만 당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새로운 ‘공안몰이’가 시작되면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질식 위기로 몰아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언론과 시민사회, 야당 등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헌재의 인적구성 변화 등 제도적 개혁까지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앞날은 암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도새가 사라진 후 토종 동식물이 잇달아 위기에 몰린 모리셔스섬의 생태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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