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계희수 기자

▲ 계희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9일로 당선 2년이 지났다. 문득 할머니가 대통령 선거 전날 밤 우리 집에 전화를 한 기억이 떠오른다. 내일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으라는 당부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잘 살게 만들었으니 그 딸도 그걸 보고 배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이유까지 댔다. 그 세대의 흔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와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보고 배웠다면 경제뿐 아니라 독재도 배웠을 거 아니냐’면서 말머리를 돌릴 거리를 찾느라 급급했다.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할머니는 집요하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할머니도 독재정권의 패악을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할머니 말에는 그가 왜 독재자의 딸을 지지하는지 이유가 실려있었다. “박근혜가 어릴 때 부모까지 여의고 불쌍하잖니…” 아니 그건 지극히 개인적 인생사가 아닌가? 내 머릿속에 ‘불우함’은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에 들어있지 않았다.

나도 오기가 작동해 거꾸로 할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감정에 호소했다. 나는 “여당이 방송국을 망가뜨려 PD들이 다 잘렸다”며 “평생 취직 못 할지도 모르고 입사해도 파리 목숨”이라고 할머니를 겁줬다. 되돌아온 말은 “그래도 새누리당이 일을 잘한다”는 거였다. 첫 손주인 나를 자식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할머니는 내 미래보다 ‘불쌍한’ 박근혜 후보와 그의 당을 선택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선거연설에서 공약을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약속 지키는 민생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했다.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독일인에게 히틀러를 위대한 지도자로 선전한 괴벨스는 ‘이성은 필요 없다, 오직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라’고 했다. 할머니는 괴벨스 말처럼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중대한 일에 감정적으로 접근해 타인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할머니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도된다. 열심히 활동하는 ‘엄마부대봉사단’이나 ‘어버이연합’의 주장도 정도의 차이일 뿐 핵심은 다르지 않다. 

주목할 점은 노년층이 발 벗고 나서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만, 실상 그들은 노년층의 복지에 별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보수 정당의 선전선동이 먹혀 들어가 만년 지지자들을 확보한 것이다. 선동에 넘어간 노인들은 지지층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이를 선동하려 든다.

할머니는 나름대로 보수 정당을 찍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뒤에 당신 소유 빌라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라는 비판 속에 여러 기준들을 완화하는 동안 세금을 꽤나 덜 낼 수 있는 이득을 보았다. 당신에게 유리하기에 그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터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것을 지지 이유로 들지 않았다. 

송파구 등 강남3구 주민들이 보수당에 표를 던지는 건 한국 정치 지형에서 매우 익숙한 일이다. 괴벨스는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말했다. 보수 정당은 경제성장 프레임과 ‘연민’ 마케팅으로 우리 할머니와 그 세대를 지배했고, 결국 권력을 장악했다. 

우리 할머니 같은 노인들은 세월호 사건 등 온갖 악재 속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기반이다. 그들은 노인복지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어겼을 때도 돌아서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여론조사기관들은 ‘콘크리트 지지층’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선거 때가 되면 그들 대다수는 또 보수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선전선동이 언제나 선거판을 좌우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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