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자승자박

▲ 김봉기 기자

나폴레옹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참패한 뒤 ‘대륙봉쇄령’을 공포한다. 영국이나 타국 선박의 유럽 대륙과 영국 항해를 막아 영국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영국과 식민지 사이의 교역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영국과 무역이 막히자 경제난을 겪은 것은 오히려 유럽 대륙이었다. 결국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을 어겼고 이를 응징하고자 러시아 원정에 나선 것이 나폴레옹 몰락의 시작이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뒤 이명박 대통령은 5.24조치로 남북한 교류를 전면 중단시켰다. 대북 지원사업과 신규 투자, 그리고 교역을 막아 북한 정권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북한봉쇄령이 내려진 지 4년이 지났다. 결과는 오히려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왔다.

5.24조치 이후 북한의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할 수 없게 된 한국 항공사들은 2013년 한 해에만 166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5.24조치 이후 남북이 입은 직접 경제피해는 각각 89억달러, 22억달러를 기록했다. 관광과 교역이 중단됐을 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험이 증가하면서 부담하게 된 간접 피해는 27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 북한 봉쇄령이 내려진 지 4년이 지났다. 결과는 오히려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왔다. ⓒ SBS <모닝와이드> 화면 갈무리

남북 관계가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이득을 보는 데가 있었다. 지난해 북한과 중국의 무역규모는 65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5.24조치로 제 몫을 떼어내 중국에 가져다 준 꼴이다. 중국이 얻은 것은 눈에 보이는 교역량 증가만이 아니다. 중국은 평양과 신의주간 고속철도와 도로 건설에 투자하기로 했고, 북한의 철광∙동광∙탄광 채굴권까지 획득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철도 현대화를 대가로 희토류 금속 채굴권을 얻었다.

대외교역 증가와 더불어 북한 식량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2014년 북한의 식량 소요량은 최소 537만톤으로 북한 내 예상 생산량 503만톤과 상업수입 30만톤을 빼면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4만톤에 불과하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곡물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2012년부터 하락하고 있는 평양의 쌀 시장가격으로도 알 수 있다.

김정은이 40일간 잠적했다며 북한의 권력구조가 불안해지기만을 기대하는 한국 정부와 보수언론의 바람과 달리 북한 정권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박근혜 정권은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오자 이제서야 대북화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어린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건 나만의 소견일까?

천박한 발언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결실을 맺으려면 무엇보다 5.24조치를 푸는 것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으로 자신과 프랑스의 운명을 옥죄고 만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남북한을 옥죄고 있는 5.24조치를 빨리 풀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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