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획일주의’

▲ 구은모 기자

김해경은 자주 갑갑함을 느꼈다. 자신의 재능을 가로막는 식민지 백성이란 굴레가 갑갑했고, 돈벌이에 서툰 자신의 비루한 형편이 갑갑했으며, 각혈하는 나약한 육체가 갑갑했다. 갑갑했던 그는 13인의 아해((兒孩, 아이)들을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 질주하게 한다. 아해들은 무섭다고 소리치며 달려가지만 그들 앞에는 막다른 골목길뿐이다. 

그는 시 ‘오감도 시제1호’에서 탈출구가 없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는 아해들을 창조한다. 아해들은 열심히 뛰어가지만 자신만의 목표가 있어 달리는 건 아니다. 원인 모를 두려움이 그들을 몰아대기에 그저 무서워서 달릴 뿐이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개인은 숫자가 부여된 여러 아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막다른 골목으로 무서워하며 달려가는 아해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갑갑한데, 그 갑갑한 꼴이 꼭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닮았다. 나는 이른바 ‘롤 모델’이란 이들의 삶을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들이 앞서간 발자국을 최대한 따라 밟아보려 하고, 그들의 경험을 경험해보려 한다. 그네들 삶의 방식을 ‘복사-붙여넣기’한 뒤 꾸며보는데 매번 여의치 않다. 결국 이것저것 붙여 넣어 누더기가 된 기형적인 꼴라주만 남는다.  

삶이란 일종의 꼴라주다. 그러나 꼴라주가 누더기가 되느냐 온전한 작품이 되느냐 하는 문제는 만만찮다. 인간은 모방을 통해 사회규범을 익힌다. 중요한 건 모방 뒤에 마주하는 갈림길인데, 자신이 모방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창조적 길을 개척할지 대다수가 걸어갔던 표절의 길을 답습할지 선택해야 한다.   

김해경처럼 나도 막다른 골목길에 서있다. 김해경은 막힌 골목으로 수렴하는 사회가 갑갑했고, 그런 사회에 갇혀버린 자신이 갑갑했다. 그는 갑갑함에서 벗어나려고 개명(改名)을 택한다. 김해경은 이상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창조한다. 그는 김해경과 그를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자기분열을 냉정하게 글로 옮겼다. 이상은 더 이상 김해경이 아니었다. 김해경은 죽었지만 그가 위악적으로 연기한 이상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상은 막다른 골목길에 머물지 않고, 담을 넘어 ‘존재론적 모험’을 떠났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동경과 시샘이 뒤섞인다. 기존 문법에 문제의식을 갖고 갑갑함을 느꼈다면 그곳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몰아가는 대로 달리는 데 익숙해진 아해에게 탈출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수렴적 사고를 강요하며 다양한 사고의 싹을 잘라왔다. 사고를 가지치기 당한 탓인지 수많은 아해들은 갈수록 ‘0’에 수렴해가는 모범답안만을 향해 서로를 무서워하며 달려든다. 나도 이 질주에 참여해 모범답안만을 베끼며 살아왔는데 그마저 성공적이지 못하니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 기존 문법에 문제의식을 갖고 갑갑함을 느꼈다면 그곳에서 탈출해야 한다. ⓒ Unsplash

길은 뚫린 골목이어야 적당하다.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터줘야 아해들은 서로를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 모두가 이상처럼 전위가 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전위를 꿈꿔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시도조차 없다면 너무 갑갑하다. 창조적 삶을 살아보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계속될 때 비로소 겨우 그 문턱에 가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지금처럼 한 방향으로 모두를 몰아대는 분위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베껴서라도 맨 먼저 달려나가는 데 온 힘을 쏟게 돼있다.   

삶의 창조는 비범하다. 갑갑함은 비범한 개명 없이 해소되지 않는다. 표절하는 인간이 어찌 후련한 삶을 살까? 당신도 나처럼 그리고 김해경처럼 갑갑하다면, 지금은 개명이 필요한 시간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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